어쩜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가진 온도가 네게도 그대로 느껴지길 기대했던 거 같다. 관계에서 오는 삐그덕은 아마 그 온도의 차이로 인한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 9월 어느 날>
홍콩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 실망감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호텔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린 그때 내 눈앞에 펼쳐진 이 곳은 내가 생각하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처음 호텔 주변이 어떤 동네 인지도 몰랐다. 그저 가장 번화한 곳이라고만 호텔 설명에 적혀 있었다. 내가 처음 홍콩에서 발길을 마주한 곳은 침사추이였다. 건물들은 금방이라도 쓰러 질 것만 같았다. 상상했었던 휘황찬란한 고층 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홍콩은 쇼핑하러 간다고 하는데 쇼핑은 도대체 어디서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슈트 입은 멋들어진 남성들이 길거리에 잔뜩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5명 중 1명의 홍콩 남자들에게서 풍겨오는 땀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기대가 너무 컸었다. 여행은 어쩜 내 취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첫날 침사추이 그 번화한 길목 사람들 틈에 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여행은 어쩜 나에게 맞는 옷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여행에 대해서 단단히 착각하고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거 같다. 그때..
그러나 조금씩 여행이라는 온도를 알게 되었고 홍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지금 나는 틈만 나면 여행을 간다. 기대가 점점 맞춰지면서 새로운 거리 위에서의 낯섦을 즐기게 되었다. 나는 홍콩 그 쾌쾌함의 매력을, 번잡함과 낡음을, 새 건물들과 어우러지는 쓰러질 듯 한 건물들이 주는 묘한 끌림을 알게 되었다. 차츰 차츰 이 도시와 나와의 온도를 맞추면서 기대는 사라지고 이해가 남게 되었다.
뭔가 마음속에 답답함이 풀리지 않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 밤은 침대에 누워 방 천정을 보다가 문뜩 '나를 이해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든다. 결국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혼자 온갖 감성에 휩싸였다 겨우 잠이 든 적이 있다.
그러다 문뜩 홍콩 여행을 처음 했을때 침사추이에 덩그러니 서있던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나는 혹시 너에게 나의 온도를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어쩜 오롯이 내 온도에서만 남을 이해시키려고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내가 이만큼 힘들 때 나에 아픔을 너도 나만큼 공감해 주길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 이 기쁨과 설렘을 너도 이만큼 알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계획과 미래를 너도 함께 가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마음속에 어떠한 선을 정해 놓고 내가 느끼는 이 마음을 상대방에게 이해받기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지는 않아도 통한다는 그런 건 사실 없다. 심지어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은데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이기심이라니...
서로에 다른 온도를 맞추기는 힘들다. 나도 누군가의 온도에 맞춰 상대방을 이해해 주기가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매일 관계 속에서 오는 온도차로부터 기대와 실망 속에서 결국 난 혼자라고 극단으로 몰아간 건지도 모르겠다. 관계에 온도를 조금 맞춰 보도록 해 봐야겠다. 우선은 그 기대를 조금씩 조금씩 거두어 보도록 해 보는 노력 먼저 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