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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Sep 04. 2017

낯섦의 무게

처음, 어색함과 마주하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환경과 어디선가에서 만났던 거 같은데 처음 보는 누군가와 첫인사를 나눴다. 여전했다. 회사라는 공간이 주는 그 친숙한 냄새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묘하게 고조된 분위기와 어쩐지 지쳐 있는 사람들과 그래도 하루를 이겨내는 그들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첫날 대면하게 되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예상하고 왔지만 막상 그 상황에 맞닥트리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나만 빼고 모두 바빠 보였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4배 빠르게 돌아가는 배경 속에서 혼자 정지되어 있는 인물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회의를 참석했지만 반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약어로 대화하는 팀원들 속에서 나는 지금 매우 집중하고 있고, 언제라도 업무가 주어지면 잘 해낼 수 있는 인력이다 라는(터무니없는 욕심에서 비롯된 생각인 듯하다) 인식을 주기 위해 평소보다 힘껏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함께 일하시는 부장님이 읽어 보라고 전달 해 주신 PPT 문서를 하루 종일 붙잡고 보고 있자니 아무리 몰두해서 읽으려 노력해도 잠이 스르르 쏟아 지기 일수였다. 이렇게 낯설고 편치 않은 상황 속에서도 졸음이 쏟아진다니... 5분에 한번 꼴로 시계를 쳐다보며 퇴근하기를 기다리는데 시간은 어쩜 이리도 느리게 흘러 가는지.. 이곳에서만 나의 시간이 멈춘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이직 첫날 하루를 마감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그 어떤 날보다 피로가 더 쏟아졌다. 한 일이라고는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친 것 밖에 없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어색함이 주는 피로란 오래간만에 운동을 해 안 쓰던 근육을 써 다음날 하루 종일 근육통에 시달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과 같았다.

'익숙해지겠지.. 이런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도, 그러다 보면 온몸에 파고드는 이피로도 금방 없어질 거야.. ' 하고 오늘 하루 고생한, 사실 고생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어쨌든 오늘 하루의 낯섦을 잘 이겨낸 나에게 수고했다는 한마디 던져 보았다.

뭐든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노력해 봐도 이 불편한 감정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시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해 보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잠이 들었다. 



<2014년 10월. Oita와 처음 마주 하던 날>

메구미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후쿠오카공항에 도착했다. 후쿠오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메구미가 살고 있는 오이타에 도착했다. 오이타 역에 도착하여 메구미 집을 가기 위해서 메구미를 기다렸다. 몇 분이 지난 후 메시지가 왔다. 일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 미에가 대신 역으로 나를 데리러 온다는 내용이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메구미 동생 미에가 나를 데리러 나왔다.


2년 전쯤 메구미는 동생 미에와 함께 서울로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 처음이라는 미에를 위해서 말은 제대로 통하진 않았지만 나는 한국에 문화와 서울의 느낌을 전달해 주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해댔었다. 당시에 내가 자주 가던 가로수길 커피숍과 교보서점을 데려갔었고, 또 내가 좋아하던 삼겹살집으로 안내했었다. 여행 첫날이었던 미에는 아마 아무리 내가 잘해 주려 노력해도 모든 상황이 어리둥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인상은 낯선 환경에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이었고 일본말을 할 줄 모르는 나와 어설프게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긴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오이타 역에 나를 데리러 온 미에는 서울에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에게 익숙한 공간이라서 그런지 서울에서 봤었던 모습보다 훨씬 더 편안해 보였다. 오이타에 온 걸 환영한다며 여유로운 미소를 내게 지었고, 2년 전 보다 영어가 조금 는 느낌도 들었다. 조그마한 지하철역에, 관광객 한 명 보이지 않는 그런 곳에 우두커니 커리어 가방 하나 들고 서 있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니 나도 조금 마음이 안심이 되었다. 아마 지금 미에에 눈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서울에서 본 미에를 보는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이타는 작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그래도 처음 마주하는 익숙하지 않은 거리와 길목을 걷는 내 불안한 마음을 눈치챘는지 나를 안정시켜주기 위해 10분만 걷다 보면 집이 나올 거다, 지나가다 보이는 큰 쇼핑몰을 가리키며 쇼핑할 게 있음 저 백화점 가서 쇼핑을 하라며 짧은 시간 내에도 이런저런 설명해 주었다. 아기자기한 골목을 지나 메구미와 미에가 살고 있는 아파트[Flat] 에도착했다. 나를 위해서 미에는 자기가 쓰고 있는 방을 내주었다. 본인은 언니인 메구미와 지내면 된다며.. 

그리고 차를 한잔 내어 주고 우선 조금 편히 쉬라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모든 순간에는 시작이 있다. 그리고 그 참기 어려운 어색함을 마주하는 순간도 함께 온다. 

일도, 사랑도, 여행도, 삶에서도..

이 부자연스러운 찰나 없이는 변화도 없겠지, 그리고 또 언젠가 이 어색함이 익숙함으로 변하는 순간 다시 지루함과 마주하는 순간도 오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 견뎌야 하는 어색함과 언젠가는 들이닥칠 지루함의 경계. 조급해진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오늘도 하루 견뎌본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날을 기다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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