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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Jan 27. 2018

저도 오늘이 처음입니다만,

완벽할 수는 없다. 원망할 필요도 없다.

혼돈스러울 때가 있다.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살아가는 건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내가 원하던 자리인지,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옳은 방향인지 하는 혼돈.


나는 잘 걸어가고 있는 걸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어쩌지' 하는 초조함과 불안함.


무언가가 잘 안 풀리 때면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내 탓이기에 누굴 원망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럴 때면 자존감이 땅으로 떨어진다. 원망할 상대도 원망할 대상 조차 없는 삶.



면접을 간 적이 있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원서를 냈었고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연락이 왔다. 누군가한테 짧은 시간 동안, '저 정말 괜찮은 사람입니다. 이곳에서 일 진짜 열심히  잘할 수 있습니다' 라며 나를 홍보하고 어필해야 하는 면접이라는 관문은 언제나 짜증 나고 긴장되는 일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다른 이에게 간택되는 게 참 쉽지만은 않은 일이란 걸 인정해야 한다. 때론 자존심 상하고 '내가 뭐 어때서!! 굽신 가릴 거 없어.' 하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도 면접, 그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면 나도 모르게 "제발 좀 뽑아주세요, 무슨 일이든 시키는 일 다 하겠습니다."라는 모드로 전환 되게 된다.


어쨌든 갑자기 찾아온 기회에 기쁨 반 긴장감 반으로 면접 장소로 향했다. 1차는 HR 면접으로 15분 정도 인사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눴고 뒤 이어 실무 담당자가 들어왔다. 면접관은 뜻밖에 외국인 여자였다(싱가포르 국적인듯했다). 갑자스런 영어면접에 반쯤 당황했는데 마음이 차분해질 시간도 없이 그녀의 직설적이고 폭풍과 같은 질문들이 바로 시작되었다. 내가 지원한 업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이 회사에 대해서는 조사를 해보았는지 등등. 혹여라도 내가 말을 돌려서 대답하려고 치면 다시 질문하며 이거에 대해서만 대답하라고 딱 잘라 이야기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면접이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가 내게 전한 한마디,


"너에 경력은 잘 알겠는데 미안하지만 우리가 뽑으려는 포지션에 당신은 적합하지 않은 듯 해."


순간 머리가 띵 하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나를 홍보해 보려고 그 부분도 두루두루 다 잘 알고 있고 금방 배울 수 있다며 마지막 몸부림을 쳤는데 다시 한번 그녀는 내게,


"아니. 우리는 딱 그 경력자, 그 부분에 대한 전문가를 원해. 너는 부족해."


웃으며 만나서 반가웠다고 사무실을 나왔지만 어딘가 땅으로 숨고 싶었다. 내가 경력 충분하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타인에게서 그것도 바로 내 앞에서 듣는 순간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마음이 쓰렸다. 돌아가는 길에 그녀를 마구 욕해 댔다. '아니 왜 뻔히 이력서를 보고 내 경력을 알면서 구태여 나를 면접까지 불러낸 거야.' 화가 났다. 그러다 다시 우울해졌다. '나는 왜 이렇게 경력을 쌓아온 걸까.. 그때 왜 참지 못하고 그 회사를 박차고 나온 걸까.. ' 하는 생각에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그 면접관을 비난할 이유조차 없었다. 그녀는 그저 사실만 전했을 뿐.. 그녀를 욕해댔던 건 한탄할 대상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한 동안 그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았다. 생각보다 오래갔다. 나이는 찼고 어느 분야에 전문가는 되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이 업무 저 업무 하다 보니 뭐 대충 껴 맞추면 어디서든 일은 할 수야 있기는 하겠지만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화가 나 이상한 여자라고 욕도 해보았다. 그러나 결국 원점은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후회였다.


그렇게 며칠을 그 생각에 사로잡혀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지인에게 요즘 기분 상태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전해 들은 위로의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우리 모두 그때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을지 몰라.

나도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하고 있는 이 분야의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저번에 면접 가서,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우리 회사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 이 업무에 지원하셨습니까?

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었어.

그저 타인의 눈으로 보면 나 아닌 누군가는 항상 더 커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일 뿐이야.

하지만 우리 모두 나름에 고충이 존재해. 네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네가 잘못된 선택을 했었던 것도 아니야. 단지 그곳과 네가 맞지 않았을 뿐이야.

우리는 그냥 어제 했던 것처럼 그제 했던 것처럼 오늘 최선을 다 하면 돼.

다른 기회가 또 기다리고 있을 거야.

우리 모두 오늘이 처음 이잖아.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돼지 뭐. 내가 하는 말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내게 진심으로 해주었던 말이 계속 생각이 나서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고 그저 그곳과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를 위로해주려고 해주었던 그 말이 참 많이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오늘이 처음이다. 오늘이 처음이다. 처음인 오늘. 그저 지금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왜냐면 우리는 오늘이 처음이기에...


물론 내일을 먼저 알고 지금의 선택을 하면 그 보다 완벽한 삶이 있을까. 면접에 떨어질 걸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 면접관이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걸 장담할 수 있었다면 굳이 시간 내어 그 면접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이 처음이고 당장 1시간 후에, 내일 내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오늘,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나아갈 뿐이다. 나는 잘못 살아오지 않았고 또 그런 나를 원망할 필요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인 오늘을 살아가며 내게 그저 어제의 실수만 반복하지 않는다면 그걸로도 됐다, 하고 위로를 건네 보아야겠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 어깨를 토닥이며 혼자 중얼거려 보았다.


나도 오늘이 처음입니다.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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