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메리

by 김 경덕

내 친구 메리


狗와 犬은 어떻게 구분하나?

식용과 애완용? 글쎄,,,,,,,,,

구는 비둘기 鳩, 갈매기 鷗, 망아지 駒, 마지막으로 개 狗 다.

동명을 쓰는 이웃하는 친구들은 모두 별로다.

犬으로 가자. 우리말로 강아지로 부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나는 어릴 적 삽살개 잡종과 십삼 여 연간을 함께 지냈다.

이름은 전쟁 후라 미국 흉내 내느라고 붙인 흔하디 흔한 '메리'이다.

늙고 병이 들어 집 나간 지 일주일 여 제방 너머에 죽어있는 메리를 나는 눈물로

이별하며 땅속에 고이 묻어 주었다.


메리와 소싯적에 함께한 일화들을 옮겨 볼까 한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여섯 살 때쯤 메리 엄마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다고 하였다.

이웃에 분양하고 그중 가장 견실하고 잘 생긴 '메리'를 제 어미와 함께 5개월여를

정성껏 키웠다.

지금은 부산시에 편입되었지만 옛 날 동래군 기장면 안평이라는 마을에 사시던

작은 외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다니려 오셨다.

메리를 보시고서는 마음에 드셨던지 달라고 하셨고 어미가 있기 때문에

어머님은 선 듯 승낙을 하시고 내어주셨다.

교통편이 원만치 못하던 6.25 직후라 할아버지는 낙동강을 거룻배로 건너 만덕 고개를

넘고 동래 시가지를 지나 기장까지 걸어서 메리를 안고 가셨다고 하셨다.

직선거리로 50KM 정도이지만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시가지를 통과해야 하는

멀고 험한 길이다.

한 달여 후 이렇게 시집을 간 '메리'가 다시 우리 집에 나타났다.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몸이 마르고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다.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눈곱이 잔뜩 낀 메리를 어머니께서 처음에는 알아보지를

못했다고 하셨다.

눈이 반쯤 가려진 삽사리 잡종이라 그나마 알아볼 수가 있었다고 하셨다.

몸을 씻기고 음식을 제대로 먹였더니 금세 기력을 회복하였고 그 험한 길을 다시

돌아온 영물이라고 다시 우리 집에서 키우기로 하였다.

이러한 메리가 내가 여섯 살 때부터 나의 친구가 되어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면서 때론 동무요, 때로는 나를 지켜주는 보디가드 역할을 훌륭히 하여 주었다.


어릴 적 여름철에는 소를 몰고 다니며 들판에서 풀을 먹이는 일이 우리들의 일과였다.

강가나 둑에서 풀을 먹일 때는 고삐를 뿔에 감아놓고 방목을 해도 되지만 벼가 있는

좁은 논두렁에서 풀을 먹일 때는 꼭 고삐를 잡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가 풀 대신 벼를 뜯어먹기 때문이다.

햇 빛이 뜨거운 한낮에 꼬삐를 잡고 한 참을 따라다니다 보면 졸음이 몰려온다.

이럴 때는 고삐를 놓고 눈을 감고서는 앉은 자세로 잠깐씩 졸기도 한다.

소도 머리가 있는지라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벼를 순식간에 실례를 한다.

그러나 먹기만 했지 벼를 뜯어먹고 나면 그 흔적이 남는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눈을 뜨고 소가 벼를 먹은 흔적을 발견하면 고삐를 바짝 당겨서는 사정없이 고삐

끝으로 소의 따귀를 때린다.

순진한 소는 눈물까지 흘리며 방금 한 일을 후회를 하고,,,,,

이런 일이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된다.

이런 행동을 유심히 보아온 나의 친구 메리, 드디어 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고삐를 놓고 졸고 있는데 메리가 나의 팔을 물고서는 잡아당긴다.

처음에는 장난치는 줄 알고 메리를 발로 걷어 차기도 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길래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소가 벼를 뜯어먹고 있는 중이었다.

즉 메리가 소가 잘못하는 일을 나에게 고자질하고 있는 것이었다.

똑똑한 내 친구 메리,,,,,


이렇게 나와 함께 성장한 메리 ,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나는 약 6km가 넘는 둑 길을

한 시간 걸어 구포역 전까지 가서는 50분 열차를 타고 다시 학교까지 30 분 걸어가는

먼 길을 아침저녁 힘들게 왔다 갔다 하는 통학을 하였다.

아침 길에는 문제가 없으나 귀가 길에는 인가가 한 참 떨어져 있는 낙동강 삼각주 시작점인

대동 수문 다리를 통과해야만 했다. 이곳은 강도나 불량배들이 종종 밤 길목을 지키고서는

지나는 행인들을 괴롭히곤 하는 우범지대였다.

어느 가을날 밤 혼자 하교하다 불량배들에게 직접 폭행을 당한 적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메리가 들었는지 어느 날 밤부터 우리 집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

까지 메리가 매일 밤 마중을 나왔다. 다리는 건너지 않고 건너편 다리 목에 숨어있다가

내가 다리 위에 올라서면 어김없이 헛기침으로 신호를 보낸다.

내가 다리를 다 건너고 나면 좋아서 뛰어오르고 나는 한번 힘차게 안아주고,

때론 부산 식당가에서 주워 온 귀한 먹거리를 선물로 내어 주곤 하였다.

한 번은 다리목을 지키던 이상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자 눈에 시퍼런 불을 켜고 덤벼 들듯이

으르렁대던 메리를 실제로 목격하기도 하였다.


이런 내 친구 메리가 고등학교 3학년 봄 어느 날 집을 나갔다.

외삼촌 애기로는 메리가 영리하기 때문에 늙고 병이 들자 스스로 집을 나갔다고 하셨다.

어느 날 새벽 내가 자는 방 툇마루 앞에서 메리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흉측한 몰골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메리야, 배 고프니?"

"그래 기다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먹다 남은 식은 밥을 갖다 주었다.

조용히 먹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집을 나갔다.

새벽마다 그러기를 일주일 여 어느 날 학교에 갖다 돌아오니 삼촌 께서 메리가 둑 너머에

죽어있다고 하셨다.

밤이 늦었지만 삽을 들고 둑으로 나가 메리의 시신을 수습하여 주었다.

13년을 삶을 같이한 내 친구 메리를 나는 그렇게 눈물로 하직 인사를 하고서는

수많은 추억만 가슴에 안은채 쓸쓸히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2015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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