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메르스 공포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학교가 휴업하는 바람에 서울서 내려온 손주들의 분탕질 때문에 온 집안이 소란스럽다.
메르스는 사실 감기의 일종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어찌 보면 매우 친근한 이웃이며 친구다.
하나님은 이러한 유해 바이러스와 인간이 공존은 하되 어느 한편에게 절대적인 우위를
허락하지는 않으셨다.
그러하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지지 않고 지구를 오늘날까지 지배를 하고 있다.
하루빨리 면역 항체가 생겨서 일상의 감기 증상으로만 인식되기를 고대한다.
초등학교 2학년 봄 신종 일본 독감에 걸려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쓰라린 경험이 있다.
허약 체질로 인해 여러 가지 잔병치레로 돌다리를 건너듯이 조심스럽게 유년기를
보내던 시절, 그 해 봄 또다시 약한 감기 증상으로 드러눕게 되었다.
면 소재지에 있는 병원(의원)에 몇 차례 들려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차도가 없었고
병세는 점점 깊어만 갔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아버님은 그 당시 유명한 의사가 있다는 부산 복음병원으로 나를
다리고 가셨다.
그 의사는 다름 아닌 김 일성 주치의를 하셨던 장 기려 박사이다.
6.25 사변 직후 박사님은 남으로 내려오셔서 개신교 재단이 운영하던 이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계셨다.
혼란이 가시지 않은 그 시절에는 병원 시설은 물론이고 치료약마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박사님의 모습은 얼굴은 굉장히 희고, 검은 태 안경을 끼시고,
목소리는 무척이나 온화하셨다. 이 분이면 내 병을 쉽게 고쳐 주실 것 같은 확실한 믿음이
가는 그런 인상을 가진 분이셨다.
청진기로 내 가슴과 등을 이리저리 진찰하시더니 박사님은 조용히 결론을 내리셨다.
'복막염'
입원을 하고 연일 투약과 치료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점점 깊어만 갔다.
한 달이 지난 후 박사님은 아버님께 조용히 말씀하셨다고 하셨다.
이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집으로 내리고 가서 편안히 가게 하라고,,,,,
피골이 상접한 어린 나는 포대기에 쌓여 죽을 날만 고대하며 고향 집으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8살, 비록 이름 모를 병이 들어 몸은 망가져 있었지만 정신만은 말짱했다.
모든 사람이 존경하며 또 내 병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장박사였지만 원망스럽고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고향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안방 아랫목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생생한 기억 중 하나, 교회 사모님이 찔레꽃을 꺾어 가지고 병문안을 오셨다.
밖에서 어머님과 주고받는 대화,
'아이고 불쌍해서 어쩌지?'
'하늘나라 가기 전에 꽃구경이나 실컷 하라고 '
말끝을 흘리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님을 밖에서 위로하고 계셨다.
나는 이 대화를 지금도 잊지 않고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I want to live! "
스잔 헤이워드가 주연한 영화 제목이 아니다.
그 당시 나이는 어렸지만 살고 싶은 나의 다급한 절규였다.
비록 철없는 어린 나이였지만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머니에게 솟아낸 끝없는 투정과 불평뿐,
왜 나를 다시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이렇게 내 버려두냐고 계속해서 투정도 하고 항의를 했다.
제가 죽기는 정말 싫은가 보다 라는 어른 들의 수군거림은 계속되었고 이 소문이
인근 마을로 펴져 나가자 위 마을 사시는 인척 분이 병문안차 찾아오셨다.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시더니 구포에 가면 최근 일본에서 귀국한 용한 의사가 있다는데,,,,,
하시며 지나가는 투로 한 마디 하셨다.
순간 나는 귀가 번쩍 터이며 스쳐가는 예감에 그 의사를 만나게 되면 내 병을 분명히 고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아버님은 수소문하여 서둘러 그 의사의 거처를 알아내셨고
차편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자전거 편으로 사람을 보내 십오 리 이상 떨어진 우리 집까지 의사를
모시고 왔다. 환자가 워낙 허약해서 의사 선생님이 직접 먼 시골길로 왕진 오신 것이었다.
이른 아침 방으로 들어선 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문진과 질문을 하시더니
"아, 이 병 별거 아니에요"
일본 말 투의 서툰 우리말이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유행한 독감입니다."
메모를 적어서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건네주며 병원에 가서 바로 약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얼마 후 이 귀중한 주사를 맞았고 주사를 맞은 직 후 분명히 다시 살아날 것 같은
분명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날 오후 나는 일어서고 싶었고 다음 날은 문 밖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이 독감을 복막염으로 잘못 알고 두 달 이상이나 헛 치료를 하면서 저승사자 문턱까지
갔다 왔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무지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이후 이 독감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괴롭히며 목숨을 앗아갔다.
지금은 독감 축에도 들지 못하는 세칭 "일본 독감"이란 놈이다.
이제는 우리 몸에 항체가 생겨 저항력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메르스' 분명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새로운 독감일 뿐이다.
너무 호들갑들을 떨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며 각자가 감염 방지를 위해
전문가들이 알려준 지침에 충실히 이행하며 따라가자.
정치적 인기몰이에 이용하거나 해당 부처의 갈팡질팡 대응만 탓하거나,
특정 병원 집단의 보호에 먼 산 바라보듯 바라만 보거나 제철 만난 듯 조잘대는 종편에
귀 기울이지 말고 이 나라에 더 나은 전염병 퇴치 인프라 구축을 위하여 중지를 모으고
다음 세대가 다시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다 같이 지혜를 모으자.
선진국은 돈으로만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까,,,,,,,,,,,,,,,
2015,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