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엽

by 김 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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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엽


일반적으로 광복절을 지나고 나면 하계휴가 열기가 갑자기 뚝 떨어진다.

요즈음은 계절에 상관하지 않고 연 중 편리한 달에 휴가를 가기도 하지만 지난

칠팔십 년대에는 그러지를 못 했다.

소속 회사나 상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기 휴가를 갈 수 있은 기간은 오직 여름

한 철뿐이다.


육칠십 년대까지는 서해안에 산재되어있는 크고 작은 해수욕장들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우리 같은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하기 휴가지였다.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 의 만리포해수욕장,

"전국 최대의 여름 목욕탕"이라고 자랑하던 대천 해수욕장,

인천에서 배를 타고 한나절 이상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을왕리 해수욕장

이런 곳들이 당시에 소문난 그래서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었던 여름 피서지들이다.


전국의 고속도로망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75년 하반기에 영동고속도로가

완전히 개통되었다.

이때부터 설악산을 포함한 강원도 동해안 지역이 서해안을 제치고 새로운 피서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 숙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이라 일반 서민들은 피서지의 민박집을

많이 이용했다.

그러나 이 민박집은 바가지요금과 불결한 시설 등으로 여름휴가의 대표적인 불만

사항이었다.

이 시기에 김 모씨 부부의 걸출한 아이디어로 콘도라는 대형 숙박시설이 전국

곳곳에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서민들이 가입하기에는 가입비가 만만치 않았다.

설사 무리해서 가입을 했더라도 여름 한 철에는 방을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경제적으로 건전한 Out door life를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텐트를 이용한 야외 캠핑 붐이었다.


행운인지 불행이었는지 모르겠지만 80년 중반부터 나는 이러한 야외 캠핑용 장비를

개발하고 전국 대리점 망을 통해 판매를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가 되었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여름휴가가 한창인 7월 하순부터 8월 중순까지는 이 부서에

속한 전 직원들은 휴가를 갈 수가 없었다.

지금은 경쟁사가 많아 소비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만 당시에는 본인이 속한

회사가 거의 판매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86인가 87인가 약간 기억이 희미하다.

성수기를 보내고 8월 하순 꼭 요즘 같은 시기에 뒤늦게 초등학교 저 학년인

두 녀석을 데리고 동해로 휴가를 떠났다.

그 해 처음으로 개장한다는 삼척 용화 해수욕장으로 반 호기심을 갖고 찾아갔지만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바닷가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이야 조용한 곳을 모두가 좋아하지만 옛날에는 피서지는 적당히 붐비고

조금은 소란스러워야 휴가 기분을 낼 수 있다고 느끼던 시절이었다.

하룻밤을 민박집에서 묵고 나니 애들이 재미없다고 하도 불평을 하기에 차를

몰고 설악산으로 다시 올라갔다.

이곳에서는 아직까지 늦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숙소를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 짓궂게도 한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그치지 않고

점점 거세어져 갔다.

엉망이 되어버린 휴가 일정을 포기하고 그날 바로 귀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늦은 오후 한계령을 넘어서니 내 설악 쪽은 거짓말같이 햇빛이 쨍쨍 내리쪼이고

있었다.

차 속에는 텐트를 비롯한 웬만한 캠핑 장비가 실려있었기에 용대리에서 차를

백담사로 방향을 틀어 계곡을 타고 조금 올라갔다.

마침 제법 큰 다리 밑에 여러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있었기에 우리도 틈을 비집고

들어가 텐트를 설치하였다.

한숨을 돌리고 비로 제법 물이 불어난 물가로 다가 땀을 식히면서 물속을 바라보니

손바닥 크기의 물고기를 유유히 헤엄을 치면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있었다.

"이놈들 봐라, 내가 그냥 둘 수는 없지"

" 내가 누군데?"

급히 차로 돌가 가서 비닐로 만든 접이식 간이 어항 두 개를 갖고 나왔다.

꾼들은 보는 눈도 다르지만 준비성도 남다르다.

그래서 최소한의 필요 도구는 항상 가까이 두고 유사시(?)를 대비한다.

속에 적당히 된장을 바르고 물속에 고정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고기가 노는 물속은

한 길이 넘었고 갑작스러운 비로 물살이 위험할 정도로 상당히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이번엔 차 속에 있는 간이용 비상 자일을 가지고 나왔다.

허리에 자일을 묶고 아내와 애들한테 한쪽 끝을 잡게 하고서는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어릴 때 익힌 잠수 경험과 해병대 시절 훈련받은 몇 가지 요령으로

약 1분간은 잠수가 가능했다.

힘들게 위치를 잡고 어항 입구를 물살과 반대 방향으로 하여 물속에 있는 돌로

겨우 고정을 시킬 수가 있었다.

그 당시는 40대 초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괘나 힘들었던 물속 작업이었다.

주위에서 함께 캠핑을 하던 사람들이 신기하듯 구경을 하다가 줄을 잡고

도와주기 시작했다.

어항을 설치한 후 약 30분 지나자 확인차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정말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고만고만한 민물고기들 꺽지, 모래무지, 미꾸라지, 세 수염 메기, 등 이름도

잘 모르는 민물고기들이 어항 속에 거의 가득 차 있었다.

단지 어항 두 개를 놓았는데 큰 코펠에 2/3 정도 찰 정도로 고기가 들어가 있었다.

아마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물고기들이 정신없이 놀다가 생전 경험하지 못한 덫에

집단으로 걸려들었던 것 같았다.

큰 놈은 손질한 후 매운탕, 작은놈들은 튀김옷을 입힌 후 튀김, 붉게 물들어 가는

내 설악의 석양을 등에 지고 최상의 술안주가 즉석에서 마련되었다.

바로 옆에 자리한 가족들을 초청하니 한 분은 모 여행사의 영업부장, 또 다른 한 분은

모 은행의 대리로 근무하는 비슷한 또래의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들이었다.

통 성명을 한 후 소주잔이 오가며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자 본인은 서서히 그날 밤의

영웅으로 격상되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덩달아 우리 집 애들은 왕자와 공주로 격상되고,,,,,,

자기들은 며칠 동안 이곳에서 캠핑을 하였는데 감히 이런 생각조차 못했다는 둥

어떻게 그렇게 물속에서 오래 잠수할 수 있느냐는 둥

어항, 자일 등 캠핑 장비를 그렇게 완벽하게 준비하고 다니느냐는 둥

질문과 칭찬이 끝없이 이어졌다.

세 가족들이 원 없이 먹고도 남은 세수염 메기는 다음날 아침 해장용으로 남겨두고

우리들은 밤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끝없이 이야기 꼬리를 이어갔다.

이런 무지한 천엽 이야기 다음에 또 계속된다.

2015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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