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첩

by 김 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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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첩


"재첩 사이소!"

"싱싱한 재첩국 사이소 !"

50-6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의 주택은 산비탈에 다닥 다닥 지은 판잣집이 대부분이었다.

이른 새벽에 이 판자촌 골목길을 재첩 장수 아주머니들이 극성스럽게 새벽잠을 깨우며

돌아다녔다. 별다른 운반 도구가 없던 시절이라 커다란 양철 물동이에 지난밤에 삶은

재첩국을 머리에 가득이고는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외치고 다녔다.

이 재첩의 주 산지는 낙동강 하구 즉 지금은 을숙도 방조제가 건설되어 있는 명지면

일대였다. 전 날 강바닥을 누비며 잡은 재첩을 밤새 끓어 껍질과 속살을 분리한 후 진주

빛깔 국물과 함께 물동이에 담아 이른 첫 새벽에 강을 건너 부산으로 팔러 나갔다.

대부분 첫 버스를 타고 각자 정해진 지역으로 단골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 사람들 역시 자갈치 아줌마 못지않게 강인한 생활력을 지닌 부산의 억척 아줌마 들이다.

한낮이나 저녁나절에 팔러 나가도 될 터 인대 왜 굳이 새벽에 팔러 다녔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도 재첩국이 해장에 좋다고 하니 특히 간에 좋다고 하니 아침에 먹을 수 있도록 소비자를

배려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고 또 일찍 팔고 돌아와야 하루 농사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한때의 지역 명산물로 이름을 널렀던 낙동강 재첩국이 남획과 하구언 축조로 인하여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자 그만 그 명맥이 끓어져 버렸다.

지금의 재첩국 본 고장은 낙동강 하구가 아닌 섬진강 하구로 바뀌어 버렸다.

그 당시 섬진강의 은어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하동 재첩국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오래전 하동을 지나다 재첩국을 한 그릇 시켜놓고 주인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60년대 후반 낙동강에서 재첩을 잡던 명지 어부 몇 사람이 이곳으로 이주를 해와서

재첩을 잡는 어구를 만들고 잡는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는 귀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과 같은 큰 강 하구에는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설물로 인해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를 한다.

이러한 특이한 염생 지역에 재첩이 서식을 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낙동강 하구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재첩을

먹지 못하는 민물조개로 만 인식하고 있었다.

어느 해인가 재첩이 간에 좋다는 신문 기사가 나자 귀한 대접을 받기 되었고 이후부터는

당당히 전국적인 식품으로 등장을 하게 되었다.


소싯적에 우리들은 요즈음 같은 여름철이 되면 거의 매일 강가에 나가 재첩을 사냥하여

어르신들 식탁에 정중히(?) 올려 들렀다.

한 여름 오후가 되면 악동들은 소를 몰고 모두 강가로 나간다.

소 고삐를 소뿔에 칭칭 감아 놓고서는 우리들은 일제히 알몸으로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하구 지역이라 수심이 서서히 깊어졌고 강바닥은 깨끗한 고운 모래와 뻘이 반반 섞이어 있었다.

하루에 두 번씩 민물과 바닷물이 적당히 교차하였기 때문에 재첩이 자라고 번식할 수 있는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조금은 상류 지역이라 전문적으로 재첩을 잡는 배들이 올라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강바닥에는 크고 작은 재첩들이 지천으로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오후 2-3시경에 시작되는 재첩 잡이는 해가 서산에 걸릴 때까지 계속된다.

조금 큰 놈을 잡으려면 20-30m 강 속으로 해엄을 처서 들어가야 한다.

그다음 숨을 몰아쉬고는 2-3m 깊이의 물속으로 들어가 강바닥을 손가락 끝으로 뒤져나간다.

한 번에 보통 두 알 이상씩은 잡아 올린다. 이렇게 한나절을 물속에서 놀면서 쉬면서 잡더라도

한 식구가 먹을 수 있는 재첩은 충분히 잡을 수가 있었다.

재첩이 귀한 대접을 받기 전이라 어떤 집에서는 쓸데없는 것 잡아왔다고 왔다고 오히려 야단을

치기도 했었다. 갯가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재첩의 독특한 향내를 싫어했었던 것 같았다.

이런 집 친구들이 잡은 재첩은 모두 내 몫이 된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소먹이러 나올 때 훔쳐 나온 마른 멸치 몇 마리나 아니면 설익은 포도 몇 알을

그 대가로 내 놓기도 했었다.

선친은 내가 잡아서 올려드리는 재첩국을 무척 좋아하셨다.

싱싱한 재첩국은 전복의 속 껍질 색깔과 비슷한 영롱한 우윳빛 아니 진줏빛 색깔을 띄우고 있다.

여기에다 부추를 적당히 넣고 한숨을 죽인 뒤 새빨간 고춧가루 한 숟가락을 풀면 정말 죽여주는

재첩국이 된다. 재첩 자체의 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다른 일체의 양념이나 조미료가 필요가 없다.

가끔 재첩의 양이 많을 때는 이 국에다 쌀가루나 밀가루를 풀어 범벅을 해 드시기도 하셨다.

꼭 재첩국 때문만이 아니었겠지만 아버님은 비교적 오랫동안 건강히 사셨고 장수하셨다.

이제 와 생각하니 소싯적에 허구한 날 걱정과 심려만 끼쳐 드린 게 아니라 엉뚱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효도를 하기도 한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재첩국 생각이 나서 하동을 지날 때나 마트에서 파는 재첩국을 사서 먹어보지만 아무래도

옛날 맛 같지가 않다. 국물은 탁하고 향이 너무 밋밋하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재첩 알의 크기가 너무 잘다(작다).

우리들이 강물 속에서 자맥질하며 잡은 재첩도 이 정도 크기는 모두 다시 강으로 돌려보냈는데,,,,

우리나라 5대강에서 잡히던 자연산 재첩도 이제 수명을 다해 가는 것 같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섬진강 재첩도 너무 남획한 탓인지 요즈음은 제대로 잡히질 않는단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재첩국이 남아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정말 안타깝다.

2015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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