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5)
회고(5)
유교적 사고로는 부모님에 대한 호불호의 언급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먼저 띠운 글에 대한 부담이 은근히 다가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선친에 대한 추억들을 몇 개 더 정리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중학교 2학년 봄 어느 날, 5,16 혁명 직후로 기억이 난다.
어느 촌 노 한 분이 수업 중인 교실을 힐끔힐끔 들여다보며 복도로 왔다
갔다 하고 계셨다.
설마 했는데 자세히 보니 바로 당신이셨다.
부끄러워서 바로 뛰쳐나가질 못하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가보니 교무실
앞에서 급사와 얘기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 학교에는 뭐 하려고 오셨는 기요?
"그냥 궁금해서 왔다 아이가."
"아버지, 자꾸 이렇게 하면 나 학교 안 다닐 겁니다"
"네 얼굴 봤으니까 됐다"라는
한 마디만 남기시고 아버지는 바로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하니 군사혁명이 난 직 후 사회가 하도 수선하니 객지에 나간
아들이 걱정이 되셔서 아침 첫 차로 내려오셨던 것이었다.
첫 직장 근무지는 명동 유네스코 빌딩 9층에 자리한 은행 본점의 한
부서였다. 결혼을 한해 그러니까 75년 가을 어느 날 아침에 통근 버스로
출근을 하니 바로 내 자리에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직장 동료들에게는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무슨 일로 이른 새벽에 올라오셨습니까?
"차비도 싸고 새벽에 내리면 하루를 번다(종일 이용) 아이가?"
"네가 어떻게 일하는지도 보고 네 살림집도 볼 겸 해서 왔다."
그날 오전 근무를 포기하고 당시 청담동에 있었던 신혼집으로 모시고 갔다.
오전에 잠깐 쉬시고서는 오후에 또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 버려셨다.
당시에 늦은 오후에 부산역을 출발하여 새벽에 용산역에 도착하는 야간
군용열차가 있었다.
이 열차가 바로 아버님이 가장 즐겨 이용하시는 서울행 교통편 이였다.
아버지는 교통 편이 불편했던 당시에도 여행을 즐겨 하셨다.
아마 그 피를 내가 많이 이어받은 것 같기도 하다.
농번기가 끝나고 나면 말도 없이 간단한 옷가지 몇 점과 성경 책을 조그만
손가방에 넣어시고서는 훌쩍 집을 나서신다.
보통은 일주일 때론 보름씩이나 당신이 가고 싶어 신 곳이면 전국 어디나
찾아가셨다.
초등학교 동창생 친구가 고향 면 농협 조합장으로 수년간 근무를 하였다.
오래전 만났더니 본인도 모르는 아버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합 사무실이 위치한 시장통 마을에 들리게 되면 조합장 응접실에 들어가서
차 대접을 받으시기도 하셨던 모양이었다.
아버님은 비교적 말씀이 적으신 편이시다.
그런데 어느 날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마침 자녀들 진학 이야기를 하면서
전국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했다.
뒤늦게 아버님이 대화에 끼어들어서 전국의 대학교들 특히 건물들에 대해
자세히 비교 평가하시면서 설명을 해주었다고 하였다.
서울 대학교, 고려 대학교, 경북 대학교 등 아버님은 아들들 몰래 아들들이
다니는 대학을 모두 방문하셨던 것이었다.
나이 많으신 당신께서 그것도 갑작스레 방문을 하게 되면 아들들이 짜증을
내고 싫어하니까 당신 혼자서만 조용히 돌아보고 가셨던 모양이다.
졸업 날 외에는 저가 다닌 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없으신데 이웃 사람들에게
졸업전에 벌써 아들 학교에 대한 이야기하신 걸 보면 몰래 다녀가신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지난날 나의 철없는 처신과 행동들이 정말 부끄럽고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축제날 타교 여학생들에게 캠퍼스를 안내해 준 것처럼 아버님을 모시고
캠퍼스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자세히 설명하며 안내해 드렸다면 얼마나
당신이 좋아하셨을까?
"얼마나 아들들이 다니는 학교들을 보고 싶으셨으면 그렇게 몰래
다녀가셨나요?"
"아버님 정말 죄송합니다"
"장남인 저가 동생들 몫까지 겹쳐서 이제야 겨우 사과를 올립니다."
2016년 4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