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 추억

by 김 경덕


식목일


식목일만 다가오면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두운 사연이 하나 있다.
52년 전 1968년 오늘 일어난 사건이다.

여러 가지 장래일을 두고 고심을 하다 그 해 3월에 진해에 있는 해병대 신병훈련소에 서둘러 입소를 하였다.
훈련 한 달여 기압이 잔뜩 들어 있을 때이다.

그해 식목일 날 오후에 진해 뒷산 즉 마진 터널 남면 쪽에

큰 산불이 일어났다.
전 훈련병들이 개인 야전삽을 총 대신 챙겨 들고 산불진화 작업에 긴급하게 동원이 되었다.
어느 정도 산불이 진화된 후 우리들은 제법 높이가 있는 어느 능선 위에 재 집결을 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소대원 중 한 명인 이**가 다가오더니 궁금한 것이 있다며 나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이 친구가 물어본 것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친구는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래서 각종 수칙을 제대로 암기하지 못했어 순검(점호) 시간만 되면 이 친구 때문에 전 소대원이 단체 기압을 받을까 봐 항상 불안해했었다.
틈날 때마다 향도인 내가 수칙을 읽어주어야만 귀로 듣고 수칙들을 암기할 수가 있었다.
생각보다는 암기를 잘하였다.

당시 월남전이 한창 치열할 때이다.
해병대 신병들은 모두 중졸 이상 지원자들로만 구성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처럼 부족한 전투 요원을 충원하기 위해 본인도 모르고 해병대로 징집당하여 입대한 신병들도 제법 있었다.
강원도 산간 출신으로 초등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서울로 이사를 했단다.
이사 후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초등학교를 중단하고 말았다고 하였다.
당시 서울의 어느 버스 차고지에서 조수로 일하며 운전과 정비일을 배우다가 갑자기 영장을 받고 입대를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입대 전 일을 나에게 간간이 들려주었는데 그중에는 어느 차장 아가씨와 살림을 차린 이야기도 들어 있었다.

"향도, 저 길은 어디로 가는 길이야?"
손가락으로 방향을 자세하게 가리키며 진해의 전체 지형과 진해에서 외부로 통하는 길은 여기 마진 터널과 동쪽에 있는 부산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두 곳뿐이라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얼마 후 우리들은 바로 아래에 있는 해군부대로 내려와서 차를 타고 훈련소로 무사히 귀대를 하였다.

엄격히 개인 자유시간을 통제하는 훈련소에서는 저녁 9시 순검 전 단 30분만 밖에 없었다.
이날은 산불 진화작업을 하고 왔다고 해서인지 자유시간이 한 시간 이상, 평소보다 길게 주어졌다.
오랜만에 사물 정리도 하고 편지도 한 장
쓰면서 여유를 부린 후 9시 점호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전 소대원을 집합시키고 인원 점검을 해보니 항상 내 주위에서 맴돌던 이 친구가 보이질 않았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체 없이 이 친구의 개인 사물이 들어있는 더블백을 뒤집어 놓고 헤쳐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군복 티가 제일 없어 보이는 겨울용 정장인 진한 녹색의 모 바지와 방한 스웨터 그리고 작업 시 주로 착용하는 단화가 보이지 않았다.
탈영?
맞아 이건 완전히 사전에 탈영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오늘 오후 산불 진화 작업 길에 진해를 벗어나는 길을 나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중대본부로 바로 달려가 당직 교관에게 그동안 일어난 상황을 자초지종 자세하게 설명 겸 보고를 하였다.
퍽! 퍽!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보고도 채 끝나기 전에 양쪽 아구가 두어 번 획 좌우로 돌아갔다.
탈영 여부를 잠시 재 확인한 후 훈련소 본부 상황실에 바로 보고를 하였다.
전 훈련소에 비상 경계령이 떨어졌다.

전 중대원이 잔뜩 긴장을 하고 각자 침대 앞에 부동자세로 늦어진 순검을 받기 위해 도열해 있었다.
당직 교관은 전 중대원이 볼 수 있도록 나를 내무실 한가운데로 불러내었다.
왈,
"야, 해병들"
"향도의 임무가 무엇인지 아냐?"
"향도는 말이냐, 소대장을 대신하여
소대원을 지휘감독을 하는 거야!
그런데,
오늘 3*소대 향도는 소대원을
감독하기는커녕 반대로 자기 소대원의
탈영을 도와주었어"

이것이 나에게 떨어진 죄목이다.
이 교관의 이름은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왕년에 사회에서 아마추어 복싱선수로 활약했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들에게 자랑을 하곤 하였다.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한참 바라본 후 주먹을 쥐고 왼손을 천천히 뻗어 나의 왼쪽 어깨를 당기는 듯하더니 정확하게 가슴 한가운데로 오른손 펀치를 날렸다.
"세어!"
당시에 기압을 받을 때는 숫자를 크게 복창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기던 때였다.
"하나" 둘" "셋"........
다섯까지는 카운트를 한 것 같은데
그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기절을 해버린 것이다.
동료들에 의하면 내가 쓰러진 후에도
두어 차례 더 발길질이 하였다고 했다.

혼절한 후 깨어나기 직전,
'나는 지금 전차 궤도 밑에 깔려 있다.
전차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내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다.
지금 내가 머리를 들면 죽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지.....'
하며 고개를 드는 순간 정신이 돌아왔다.
깨어나기 직전에 느낀 생생한 당시의 기억이다.
빨리 깨어나라고 내 머리 위해 찬물을 끼얹었다고 하였다.
깨어나고 보니 머리와 상의가 물에 흠뻑 졌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상의를 벗어 보니 동내의의 결 자국인 "V" 자 멍자국이 가슴 위에 퍼렇게 새겨져 있었다.
가슴이 아파서 바로 누울 수 조차도 없었다.
이틀을 의무실에서 엎어져 자며 치료를 받은 후 삼일차에 다시 훈련에 합류를 할 수가 있었다.
지난 추억 속, 비록 군 시절의 사건이지만 참 씁쓸하게도 오래도록 남아서 오늘만 되면 나의 기분을
착잡하게 만든다.
전차 궤도 밑에 깔렸다가 무사히 살아
돌아온 그때 그날이 바로 오늘 1968년 식목일이다.

2020, 4, 5 식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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