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속되더니 드디어 홍수와 폭우로 인한 사고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안타까운 소식들이다. 그러나 이런 폭우와 홍수로 인한 사고 소식들이 의외로 나에게는 상당히 무덤덤하게 느껴진다. 소싯적에 홍수에 대해서 하도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어릴 적에 장맛비가 계속 내리면 어른들은 항상 암 물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대비를 하셨다. 범람하는 홍수 물에 무슨 암 수가 있냐고 의아해하겠지만 당시 우리 고장에서는 범람하는 물의 위치에 따라 암수로 구분하여 불렀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낙동강 하류의 델타 지역에 위치한 나의 고향은 여름만 되면 수해가 상습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이었다.
낙동 정맥을 타고 내려온 큰 강물 줄기가 물금역 앞에서 양산강과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나무의 본 줄기가 자라면서 갈라지듯이 갈라지며 텔타 지역을 형성한다. 그래서 물금역 건너편에서 시작하는 큰 제방이 약 30km 강을 타고 내려가 남해 바다가 있는 명지 즉 을숙도까지 길게 축조되어 있다. 제방 안쪽에는 마을과 농경지가 자리 잡고 있었고 제방 바깥쪽에는 강물이 흐르는 강심과 하천부지가 자리 잡고 있다. 하천부지도 규모가 상당히 넓어 보통 때는 각종 채소류를 대량 재배하여 대도시에 출하시키는 유용한 경작지였다. 그래서 홍수가 나서 하천 바깥쪽에 물이 차면 우리는 큰 물 또는 숫 물이라고 불렀고 마을 쪽 안쪽에 물이 차면 암 물이라고 불렀다.
제방 바깥쪽에 생기는 홍수 즉 숫 물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홍수철에 대비하여 작물을 별로 심지 않고 대부분 비워두기 때문에 홍수가 나더라도 농작물에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하천부지 지역은 우리 고장에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강 상류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리면 가끔 멀쩡한 날에도 마른 홍수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암 물이 차 올라서 홍수가 나게 되면 우리는 직 간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농사의 주종인 벼 논이 침수되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사는 가옥이 침수가 되어 직접 피해를 당하기도 때문이다. 평야지대라 물이 차오를 때는 급하게 수위가 올라가지 않지만 한 번 물이차고 나면 상당히 오랜 기간 침수가 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커진다. 암 물이 차오르는 경우는 강 상류 지역과 우리가 사는 하류 지역에 동시에 폭우가 내릴 때이다. 평상시에 제방 위에 서서 마을이 위치한 지역과 하천부지가 있는 지역의 표고를 비교해 보면 강 쪽 하천부지 지역이 아마도 2-3m 정도는 더 높은 것 같았다.
얼마 전 중국 양자강 삼협댐 공사 기록을 일부 본 적이 있다.
공사를 하려고 하상을 굴착해 보니 인공으로 쌓은 제방
때문에 하상이 오랜 기간을 두고 퇴적이 되어 원래 하상보다 50m 정도나 높이진 곳도 있다고 하였다. 홍수 피해를 막으려고 이 제방을 90년 전에 쌓아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큰 강의 수위 즉 바깥쪽 숫 물의 수위가 높아지면 자체에 내린 빗물의 배수로가 막히는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암 물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숫 물의 높아진 화가 풀릴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기다리는 처지가 마치 말없이 기다리는 아녀자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암 물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 같다.
이 놈의 암 물은 이름과는 달리 아주 고약한 놈이다 아니 고약한 년이다. 조용히 오지만 남기고 가는 뒤끝은 엄청 크고 많다.
그리고 뒤끝도 오래간다. 남기고 가는 후유증도멍청 많다.
누가 붙여놓은 이름인지 모르겠으나 작명을 참 잘한 것 같다. 마치 성질 급한 경상도 숫 물을 은근히 잡아 놓고 꼼짝달싹 못 하게 하는 충청도 은근자 성질 같다.
아무튼 이런 지형 조건을 가진 우리 고장이라한 해에 일곱 번의 물난리와 세 번의 태풍이 지나가야만 여름을 날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 11층 아파트 창가에서 하루 종일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다.
물난리 걱정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빗소리를 듣는 기분이야 옛날의 어느 황제가 부럽겠냐마는 그래도 이번 폭우로 인명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