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짧다. 주일 예배 후 조별 모임을 잠깐 일탈하고 서둘러 달려 내려온 이 곳은 태안에 있는 천리포 수목원이다. 수목원 내에서 최고의 낙조를 볼 수 있는 월송정에 바로 손 윗 동서가 미리 숙소를 정해 놓았다. 여장을 풀고 나니 서편 하늘이 바로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 나이가 되면 아무리 아름다운 낙조를감상해도 감상하고 나면 즐거움 뒤에는 항상 씁쓸한 아쉬움이 뒤따른다. 아쉬움도 함께 낙조 전경을 서둘러 폰카에 집어넣었다. 몇 년을 아껴두었던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이번 길에 가지고
내려와 뚜껑을 열었다.
서해안 산 자연 광어회 한 접시,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회 와 구이 그렇게 두 접시, 살아있던 꽃게로 끓인 찌게 한 냄비와 꽃게 찜, 바라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흡족하여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글쟁이 김삿갓 손 윗 동서, 은퇴 목사 손 아랫 동서, 역마살 가득 찬 개병대 출신 이렇게 남정네는 분명 세 사람인데 시작부터 대작은 불가능한 엇 박자 집합이다.
라때와 설교식 문답이 길어진다. 심 호흡을 한 후 명품 백 포도주 한 잔을 들이켜고
밤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도 함께 따라갈 것 같아 금방 해가 떨어진 일몰 방향은 눈을 주기가 싫다. 방금 떨어진 해가 하루 종일 달려온 높은 하늘에만 눈을 고정시킨다. 새틀 구름이 조용한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고있다. 밤바다가 지난날의 멍든 가슴을 그나마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것 같다. 어두움이 깔리니 황홀한 밤바다가 뭍으로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