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상

by 김 경덕

가을바다

하루가 짧다.
주일 예배 후 조별 모임을 잠깐 일탈하고 서둘러 달려 내려온 이 곳은 태안에 있는 천리포 수목원이다.
수목원 내에서 최고의 낙조를 볼 수 있는 월송정에 바로 손 윗 동서가 미리 숙소를 정해 놓았다.
여장을 풀고 나니 서편 하늘이 바로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 나이가 되면 아무리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해도
감상하고 나면 즐거움 뒤에는 항상 씁쓸한 아쉬움이 뒤따른다. 아쉬움도 함께 낙조 전경을 서둘러 폰카에 집어넣었다.
몇 년을 아껴두었던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이번 길에 가지고

내려와 뚜껑을 열었다.


서해안 산 자연 광어회 한 접시,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회
와 구이 그렇게 두 접시,
살아있던 꽃게로 끓인 찌게 한 냄비와
꽃게 찜, 바라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흡족하여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글쟁이 김삿갓 손 윗 동서,
은퇴 목사 손 아랫 동서,
역마살 가득 찬 개병대 출신
이렇게 남정네는 분명 세 사람인데 시작부터 대작은 불가능한 엇 박자 집합이다.

라때와 설교식 문답이 길어진다.
심 호흡을 한 후 명품 백 포도주 한 잔을 들이켜고

밤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도 함께 따라갈 것 같아 금방 해가 떨어진 일몰 방향은
눈을 주기가 싫다.
방금 떨어진 해가 하루 종일 달려온 높은
하늘에만 눈을 고정시킨다.
새틀 구름이 조용한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밤바다가 지난날의 멍든 가슴을 그나마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것 같다.
어두움이 깔리니 황홀한 밤바다가 뭍으로 올라온다.

조용히 다가와 내 귀가에 앉는다.
들릴 듯 말듯한 낮은 목소리로 내 가슴에 쌓여있는

못다 부른 지난날의 노래를 대신 불러주고 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한 낮이 깊어지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황혼이 찢어가면 빌딩의 그림자
성 서럽게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

아! 아! 나도 가고 너도 가야지........

못다 한 나의 노래를 밤바다가 밤새 대신
불려주고 있다.

2017/10/15
천리포 수목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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