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구월이 왔다.
"Come September!"
중, 고등학교 6년을 부산에서 보냈기 때문에 부산은 나의 제2 고향이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9월이 돌아오면 쉬는 시간 마다 여럿이 둘러앉아 영화의 주제곡인
"구월이 오면"을 장단에 맞춰 책상을 두드리며 긴장을 풀곤 하였다.
그래서일까? 음치임에도 불구하고 가사가 없는 이 곡을 아직까지도 전곡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아침 혼자서 마음속 책상을 두드리며 추억의 십 대로 되돌아가본다.
서면은 부산에서 생활한 6년 동안에 가장 많이 지나친 학창시절 내 삶의
길목이었다.
서면 로터리 한가운데는 온천장-서면 노선과 서면-운동장 노선의 환승역이
자리잡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거처가 범내골이라 매일 아침저녁 이곳에서 환승을 하며
동래까지 전차로 통학을 하였다.
이런 연유로 4 .19 때 이곳에서 경찰의 발포로 총에 맞아 실려나가는 희생자를
곁에서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서면이 많이 변했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차로 몇 번 지나치기만
했을 뿐 직접 걸어서 돌아 보지는 못했다.
어제 성묘 차 고향에 내려갔었는데 올라오는 귀경 열차 출발 시간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었다.
서면 지하철역을 지날 때 추억의 거리를 한 번 더듬어 보고 싶어 무턱대고
서면역에서 내렸다.
당시 서면 로터리 남서 쪽 코너에 북성 극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2편 동시 상영을 자주 하는 2류 영화관이다.
용돈이란 용어마저도 낯설어했던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이라 극장의
입장료를 마련할 방도가 전혀 없었다. 어떤 때는 부모님을 속여서까지 몇 푼을
마련해서는 이 극장을 자주 들락거렸다.
요즘 학생처럼 방과 후 수업이라든지, 학원, 과외 등이 전무한 시절이었다.
이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영어 과외수업이었다.
당시에는 정통 서부영화가 한참 붐을 일으키던 시절이었다.
이 영화관을 거처 간 서부 영화는 거의 빠뜨리지 않고 다 섭렵하였던 것 같다.
케리 쿠퍼의 '하이눈',
존 웨인의 '역마차',
버트랑 카스타 의 'OK 목장의 결투, '
아란 랏드의 '센' ,
윌리엄 홀덴의 '기병대' 등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의 얼굴들과 명 장면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 중에서 마지막 장면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영화가 하나 있다.
제목은 "리버티 바란스를 쏜 사나이 "
주인공으로 나오는 배우는 서부영화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키다리
배우 '스튜어드 그랜저'.
그는 서부의 어느 개척 지역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정의파 의사로 등장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 도시에서 활동하는 불한당 두목 '리버티 바란스'와 언쟁을
벌이다가 그의 결투 제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만다.
결투를 약속한 날 어둠이 깔려오는 광장에 두 사나이가 마주 섰다.
등을 맞대고 돌아서서 약속한 룰에 따라 카운트를 하며 앞으로 조심스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 나가기 시작한다.
ONE, 2, 3, 4, FIVE, 6, 7, 8, 9 ,,,,,,,,,,,
더디어 총성은 울리고 두 사나이는 동시에 쓰러진다.
한참 뜸을 들인 후 의사인 '스튜어드 그랜저'만 서서히 일어난다.
마지막 장면으로 근처에 있는 어느 이층 창가에서 잠깐 내밀었던 총구가 서서히
들어가며 흰 연기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 장면에 그만 매료되어 내가 직접 이층 창가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악당 두목
'리버티 바란스'를 쏘았다는 환상에서 한참 동안 벗어나질 못 했다.
두 번을 더 보고 나이가 들어서도 한 번 더 보았던 추억의 영화이다.
유명한 명 배우들 외에 좋아했던 배우가 한 명 더 있었다.
이름은 '오디 머피' 키가 작고 행동이 엄청 민첩한 서부 영화 전성시대에
가끔 주인공으로도 등장한 명 배우였다.
당시 상대적으로 작은 키에 대해 주눅이 들어 있던 사춘기 시절이라
영화를 볼 때마다 이 친구가 나에게 많은 위로를 가져다주었다.
아쉽게도 이 친구가 출연한 영화는 여러 편 봤는데도 제목은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길 건너편에 새로 신축한 일류 영화관 동보 극장이 있었다.
이 새 극장에는 지린 오줌 냄새도 없고 향수 냄새가 폴폴 나며 의자는 우단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번 들어가 본 친구들이 자랑을 하였다.
그렇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나는 오랫동안 들어가 보질 못 했다.
당시에 성춘향을 장기 상영하고 있었는데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오기로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딱딱한 나무의자뿐인 북성 극장 만
아니 서부 영화만을 사랑하였다.
길을 걸으며 10여 분 만에 55여 년 전 본 영화를 모두 다시 관람하고 나니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큰 길과 서면 시장을 연결하는 좁은 이면 도로, 이 도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돼지 국밥집골목이 생각이 났다.
크기와 규모만 바뀌었을 뿐 옛날 그대로 국밥 집들이 연이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참 성장기 때 고기를 애타게 찾았던 나의 허기진 배를 돼지머리고기와 내장으로
만든 이 뜨끈한 국밥이 항상 달래주곤 했었다.
혼자 들어가 자리를 잡고 한 그릇 주문하니 6,500원이란다.
맛도 옛날 그대로였다.
재 방문을 자축하는 의미로 소주 한 병을 추가로 시켜놓고 두 잔을 연거푸 들이켜고
나니 추억 세계로 들어간 온몸이 붕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
지금은 고층 빌딩으로 변해 지나간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다시 북성 극장에 들어가 보고 싶다."
"돈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동보 극장 말고"
세월은 이렇게 많이도 흐르고 또 변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예술의 전당
같은 고급관을 들락거리며 어느덧 고가의 오케스트라도 관람하는
관객으로 변해 있었다.
"하나님, 이런 일은 감사해도 되지요?"
2016년 9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