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러시아의 침공으로 비극의 역사를 쓰고 있는 우크라이나도 있지만 희극의 역사를 쓰고 있는 우리나라도 있다.
정치 지도자는 물론 심지어 종교 지도자도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하고 있다.
진실과 사실을 보도하며 국민을 개도 해야 할 언론마저도 희극의 현장에 함께 동조하며 춤추고 있다.
최근에 이러 희극의 현장에서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두 사람의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때 나는 색도 떨어뜨린다는 전 두환은 죽어서도 아직까지 편안히 누울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반면 희극의 현장에서 열심히 우리를 웃긴 희극인 송해는 죽어서 전 국민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제일 보잘것없는 서민들이 많이 배우지 못한, 가지지 못한 평범한 국민들이 진실을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희극의 역사가 반복되는 오늘날 같은 불일치의 시대에는 두 가지의 방법 가운데 어떤 것이든 하나가 또는 동시에 자연스러운 반응을 나타낸다고 한다.
"진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분간할 수도 없다"라는 전제하에
1, 도덕적으로 방종하며 주어진 결과를 자신의 정당한 노력이나 값싼 은혜로 반응하거나
2, 자신의 '의'라는 자만심에 빠져 자신이 마치 진리인양 행동하며 반응한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이러한 희극의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십자가의 도는 무엇일까?
"십자가에서 희생당한 예수의 영원한 빛을 우리가 바로 대면하게 되면 우리 자신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어둠의 실체를 알게 된다.
이것들은 빛이신 하나님에 의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이 빛은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새 삶의 능력도 공급해주시고 주변 세상과 구분하여 살도록 만들어 주신다."
앞날을 분간하기 어려운 혼탁한 시대에는 이런 지도자, 이런 스승, 이런 성직자, 이런 어른을 보내 달라고 민초들은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