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을 기점으로 서해안 꽃게잡이 금어기에 들어가면 6월에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생선은 뭐니 뭐니 해도 병치 즉 병어다.
병어는 우리나라 서, 남해 그리고 동 중국해와 인도양에 주로 서식한다.
주 먹잇감은 작은 갑각류로 우리나라 서해안에 많이 서식하는 젓새우가 바로 이에 속한다.
그래서 모래와 뻘이 적당히 혼합된 서남해안 특히 신안군 일대는 젓새우의 주 산지 이기도 하고
또한 병어의 주산지이기도 하다. 요즈음은 병치도 갈치와 더불어 몸 값이 금값이 되어 버렸다.
그물에 걸리자 마자 제 성질에 못이겨 바로 죽어버리는 * 치자가 붙은 생선은 냉동이 어려운 시절에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1967년 대학교 2년 차 여름 방학 때 하계 봉사활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전남 영광군에 속해 있는
상낙월도, 송이도, 안마도가 우리가 봉사활동으로 찾아갈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지금은 낙도를 왕래하는
선박이 많이 현대화되고 웬만한 섬은 다리로 연육을 시켜놓아 들어가기가 편리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섬에
들어가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지정된 섬에 들어가는 길은 멀기도 하고 이용해야 할 교통편이 다양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서울 용산역에서 호남선 야간열차를 타고 밤새도록 달려 새벽녘에 장성역에 내렸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바꿔 타고 영광읍내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바꿔 타고 법성포항 까지 들어갔다. 여기서는 당시 군에서 특별히 마련해준 조그마한 통통선인 어선을 타고 각조에 배당된 각 섬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하루 종일 힘들어 들어간 곳이 바로 상낙월도이다. 낙월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50여 가구, 섬으로
면사무소와 초등학교가 이 섬에 있었다.
당시 이 섬에는 엔진이 없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멍텅구리 배로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칠산 앞바다 수로에
날개 같은 그물을 펼쳐놓고 기다리다가 조류 따라 이동하는 새우를 잡아서 젓갈을 담는 일이 이곳 주민들의 주 생업이었다.
하루 두 번 이 멍텅구리배 까지는 소형 선박이 왔다 갔다 하며 멍텅구리 배에서 잡은 새우를 실어와 바로 커다란 시멘트 수조 속에 소금과 함께 집어넣으면 새우젓 담기는 끝난다. 이렇게 넣어둔 새우를 가을까지 삭히면 서울 사람들의 가을 김장용으로 사랑받는 오젓이 되고 육젓도 되었다.
봉사 활동은 오전에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곳 초등학생들에게 여름 성경학교를 개설하여 지도하였고 오후에는 지역의 일손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 노동 봉사를 하는 것이 주 일과였다.
봉사 이틀째 날 오후 우리 단원들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학교 관사로 이곳의 면장님이 인사차 찾아오셨다.
낮 술을 하셨는지 제법 취기가 있어 보였다. 오른손에는 커다란 병어가 몇 마리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정상적인 응대가 불가능할 것 같아서 들고 온 병어를 받아 부엌으로 보낸 후 조금 떨어져 있는 나무 그늘 아래로 면장님을 모시고 갔다. 통 성명을 한 후 면장님의 넋두리가 바로 시작되었다.
당시 면장은 아마도 임명직이었던 것 같았다. 본 청에서 잘 나가는 요직에서 열심히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자기 혼자만 누명을 뒤집어썼다고 하셨다. 이 때문에 이곳으로 좌천되어 들어왔는데
너무 억울하다며 거의 매일 오후만 되면 새우젓 잡이 배에서 함께 잡히어 들어오는 병어회를 술 안주삼아 술을 벗 삼으며 세월을 낚고 계셨다.
이 날 오후 노동 봉사 대신 면장님 말동무 봉사를 하였더니 다음날부터 자칭 나를 처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새우잡이 거물에는 덕자 전후의 중간 크기 병어가 제법 많이 잡히어 함께 올라왔다.
당시 여기서 새우와 함께 잡힌 병어는 저장과 냉동 수송 문제로 낙도인 이곳에서는 상품 가치가 전혀 없었다.
일손이 부족해서인지 건조도 시키지 않았다. 그냥 먹을 수 있으면 사람이 먹고 남으면 그냥 바닷가에
버렸기 때문에 고양이나 날 짐승들의 먹잇감으로 추락해 있었다.
새우 운반선이 들어오면 면장님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병어를 얻어와 즉석에서 회를 쳤다.
거의 매일 오후만 되면 이 회를 한 접시 들고 처남! 하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학교로 올라오셨다.
회 요리는 누구보다도 좋아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요리도 매일 먹으면 질린다. 나타내는 감동의 기미가
별로 없어 보였는지 하루는 전혀 다른 모양의 회를 한 접시를 들고 올라오셨다.
"처남, 이게 무슨 생선인지 알아?"
"글쎄요..."
"이게 바로 용왕도 즐겨 먹는 덕자 병어 뱃살이야!"
다음날 궁금하기도 해서 새우젓 운반 배가 들어오는 바닷가로 나가 보았다.
젓갈용 새우와 잡께 잡힌 잡어를 분리하는데 병어가 상당히 많이 섞여 있었다.
그중에서 큰 놈만 몇 마리 골라 바닷물에 적당히 씻은 후 그 자리에서 즉석회를 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포를 떠야 할 몸통 살은 버려버리고 내장을 둘러싸고 있던 얇은 뱃살만 도려내고 있었다.
제법 큰 병어 대 여섯 마리를 잡았는데 이 뱃살은 한 접시도 채 나오지 않았다.
이 귀한 뱃살만 골라서 우리의 존경(?)하는 면장님께서 사랑하는 처남에게 극진히 대접을 하신 것이다.
지금쯤 그때 그 면장님은 아마도 하늘나라에 계실 것 같다.
"면장님, 아니 매형 감사합니다"
사실 부산 출신이라 어릴 적에는 병어를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 후로 병어는 선호하는 나의 생선 목록에 올라가게 되었고 이제는 떨어질 수 없는 절친한 친구가
되어 있다.
알마전 인천 연안 부두 수산시장에 아침 일찍 나갔다가 덕자 병어 두 마리를 건져왔다.
한 마리는 내 식탁에서 분해가 되어 나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고 다른 한 마리는 할아버지 식탐을 닮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