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류지역, 지금은 모두 체육공원, 하천부지에 조성되어있던 각자의 밭(田)에 가을 김장채소 씨앗을 파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배추 모종을 파종 시기에 맞추어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적당한 시기에 밭에다 이식만 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직파가 유일한 파종 방법이었다.
특이하게도 가을 김장채소는 하루만파종시기를 놓치거나 달리해도 성장과 수확에 확연한 차이가 난다. 파종 날자는 8월 17,18일 전후이며 그해 기후 상황에 따라 날자 선택은 농부들 각자의 판단에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8.15일부터 20일까지는 이웃 간의 품앗이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때가 되면 집집마다 나이를 불문하고 전가족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알통 배추를 전국 어디에서나 재배하고 생산해서 출하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낙동강 하류와 같은 특수지역에서만 대형 알통 배추의 생산이 가능했다. 이 지역에는 한 두 차례 여름철 홍수가 지나가고 나면 홍수 때 상류에서 실려온 토사가 제법 두껍게 퇴적층을 형성한다. 여름내 자란 잡초도 이 토사층이 깨끗하게 덮어 버린다. 이때쯤 여름 뜨거운 햇살에 땅이 굳어지면 소의 힘을 빌려 이랑을 내고 씨앗을 심을 자리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
이때부터 우리가 나서야 할 일거리 몫이 기다리고 있다.먼저 큰 정종 댓 병 밑바닥으로 30cm 정도 간격으로 곱게 다져 놓은 약 1m 정도 폭의 밭이랑 위에 두 줄씩 자국을 찍어 놓는다.
이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 항상 내가 차지하였다.
그 다음에 동생이나 다른 사람이 깨알보다 작은 배추 씨앗 2-3개를 조심스레 집어서 이 속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사람이 직접 손으로 흙을 곱게 부수면서 뿌려놓은 씨앗 위에 가볍게 덮어주면 김장 배추 파종이 모두 끝난다.
이 일들은 큰 힘이 들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초등학생만 되면 누구나이 일에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8월 여름 한낮 그늘이라고는 전무한 강가 벌판에서 종일 씨름해야만 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는 정말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이때는 방학 중이라 핑계를 대고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부잣집 소리를 들어서인지 채소밭마저도 짜증스럽게 남보다 두서 배나 더 많았다. 꼼짝없이 하루 내지 이틀은 들에 나가 중노동을 해야만 하는 주간이었다.
들에 나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요령을 부리면 바로 알아채시고
"일 하기 싫으면 밥도 먹지 마!"
"공부하기 싫으면 일을 해야지!"
라고 나무라시던 선친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살아서 들려온다.
농사일을 하기 싫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짝 공부를 조금 열심히 하여 도회지 중학교로 도망쳐 나왔는데,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님은 이 사실을 알고나 계시는지 모르겠다.
바로 오늘 내일 즉 이번 주간이 가을배추를 파종해야만 하는 주간이다.
지금은 이런 풍경들이 하나 둘 사라져 없어지고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장마 끝 폭염이지만 이때가 되면 고향 들녘으로 달려가 지난날처럼 김장 배추를 다시 한번 심어면서 땀을 흘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