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 봉사
칠순을 넘기고 나니 의욕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때론 스스로 슬픔지기도 한다.
오늘 교회 주보에 난 청년부 해비타트 하계 봉사에 동참할까 말까를 한참 망설이다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나이는 용기를 아니 객기를 사정없이 무너트리는가 보다.
대학 시절에 참여했던 여름철 하계 봉사 활동이 새삼스레 되살아 난다.
1967년 대학 2학년 때 참여하고 있던 동아리가 전남 영광 앞바다에 자리한 낙월도, 안마도,
송이도를 하계 봉사지로 선택을 했다.
그때만 해도 시골 오지나 낙도에 봉사 활동을 떠나는 것이 젊은 대학생들의 꿈이고 한편으로는
자부심이기까지도 했다.
각계 요로와 선배들의 지원으로 7월 하순 후원받은 물품을 2.5톤 트럭에 가득 싣고 약속한 시간에
우리 일행은 는 용산역으로 목포행 야간 완행열차를 타기 위해 나갔다.
당시의 용산역은 어느 시골역과 다름없이 넓은 광장과 초라한 일본식 단층 역사 건물이 전부였다.
간단한 채비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역사에 들어서니 회장과 부회장 등 간부들이 역사 안에서
역원들과 격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듣자 하니 한 트럭 분을 봉사 활동용 물품을 여객 칸에 싣겠다는 우리의 주장과 운임을 내고 수화물
칸에 실으라는 역무원들과의 논쟁이었다.
한 시간 전부터 시작됐다는 논쟁은 열차 출발 시간이 30여 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전혀 타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반 대원으로만 참가했지만 이 순간 열차 통학으로 단련된 본인의 광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광장으로 달려가 대기하고 있던 트럭에 올라타고서는 운전기사에게 무조건 역사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기사가 내가 올라타면서 급하게
서두르니 모든 게 해결된 줄 알고 차를 역사 옆에 위치한 화물 차량 전용 출입문 앞으로 몰고 갔다.
이 화물용 출입문은 항상 닫쳐 있었다.
근처에 있던 화물을 취급하는 간이 사무실에 들어가 급하게 거짓말을 속사포로 내 품기 시작했다.
"수해 복구용 청와대 긴급 물자를 싣고 왔으니 빨리 문을 열어라"
"시간이 없다"
나는 화물 중 청와대가 아닌 육영재단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던 지원 자루를 눈여겨봐 두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청와대라면 감히 고개를 바로 들고 바라볼 수도 없는 절대 권력 기관이었다.
직원이 뛰어나오더니 물품을 확인하고는 얼른 문을 열어 주었다.
철길을 두어 개 가로질려 화물 자동차는 우리가 타고 갈 객차 앞에 멈추어 섰다.
차에 미리 타고 있던 다른 대원들에게 빨리 짐을 실으라고 명하고는 역사로 달려가 아직도 역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포기한 상태에서 절망하고 있던 두 선배를 조용히 객차로 모시고 왔다.
객차 두 칸 사이는 건너 다닐 수 없을 만큼 화물로 막혀 버렸지만 열차는 정시에 긴 기적을 울리며
서서히 용산역을 출발하였다.
열차 내에서 벌어진 여객전무와 시비는 다음다음 문제고 우리가 탄 열차는 일차 목적지인 전남
장성역을 향하여 뜨거운 밤 열기와 함께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窮側通"
열차가 천안을 지나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의 여객열차는 에어컨 시설이 없었다. 더 더군다나 목포행 야간 완행열차에, 천장에 매달려
있는 선풍기 몇 대가 객차 내 유일한 냉방기구였다.
그런데 이 선풍기가 완전히 작동을 멈추어 버린 것이었다.
서서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의 객차 안에는 승객이 많았는데 선풍기마저 작동을 하지 않으니
승객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객 전무 왈, 너무 오랫동안 선풍기를 작동시키는 바람에 퓨즈가 끓어져 버렸단다.
그래서 이리, 지금의 익산역에 가야만 보수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함께한 동료들이 조금 전 용산역에서 행한 일을 떠올리며 슬며시 나한테 한번 나서 보라는
눈 신호를 보내왔다.
자신이 없었지만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화장실 옆에 위치한 배전반으로 가 보았다.
승무원들이 점검하느라고 배전반 문은 열려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선풍기용 퓨즈가 끓어져 있었고 간격은 3cm 조금 더 되는 듯해 보였다.
퓨즈? 대체할 물건? 비 절연체?
자리에 돌아와 이것저것 살펴보았지만 주변에 마땅히 전기가 통할만한 금속 물체가 보이질 않았다.
눈을 감고 한참을 궁리를 하고 있던 중 앞에 앉아 있던 동료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이다를
한 병 따서 내게 권했다.
그런데 내 발 밑에 떨어진 사이다 뚜껑을 쳐다보니 이 뚜껑이 바로 전기가 통하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얼른 집어 배전반 앞으로 달려가 퓨즈가 연결되어 있던 자리에 끼워 보았다.
뚜껑 하나로는 본래 퓨즈 간격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동료 친구의 도움을 받아 뚜껑 두 개를 적당한 크기로
찌그러트려 보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퓨즈 간격을 맞출 수가 있었다.
완전히 끼워 넣은 다음 떨리는 마음으로 배전반 스위치를 서서히 올려 보았다.
순간 온 열차 안에서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窮側通"
동료들뿐만 아니라 다른 승객들이 권하는 공짜 사이다를 받아 마시느라 밤새도록 여념이 없었다.
그날 밤, 목포행 완행열차 안에서 나는 작은 영웅이 되어 있었다.
2017년 7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