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뭇가사리
무더위 때 먹는 별식으로 콩국수와 우무 가사리가 있다.
초복을 넘어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사람들은 보양식을 찾기 시작한다.
가장 일반적인 삼계탕, 보신탕에다 민어탕 장어탕 등도 있지만 우리처럼
몸에 열기가 많은 사람은 너무 무거워서 부담스럽다.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아내가 직접 준비한 콩국에다 우무 가사리를 국수처럼
말아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먹던 중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우뭇가사리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났다.
유년 시절, 인근 마을에 우뭇가사리의 원료인 한천을 말리는 가내 공장이 있었다.
매년 겨울철에만 짚으로 만든 거적을 땅 위에 길게 깔아 놓고 그 위에
한천을 햇빛에 자연 건조했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꼭 황태처럼 완전히 건조를 시켰다.
하도 궁금해서 뭘 만드는 데 사용하는 거야라고 물어보았더니 양갱이나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량 일본으로 수출을 한다고도 하였다.
어느 날 몰래 한 줌을 훔쳐서 먹어 보았더니 정말 맛이라고는 일전 땡푼도 없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바닷가에 사셨던 외할머니께서 여름철만 되면 말린 한천을
우리 집에 가지고 오셨다.
꼭 도토리묵을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게 뜨거운 푹 물에 삶은 다음 그 물로 한천 묵
즉 우무 가사리를 만들어 주셨다.
반 투명한 이 우무 가사리는 독특한 방법으로 보관을 하였다.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이라 여름철엔 일반 음식은 하루 이상 보관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 우뭇가사리는 굳은 후 바로 옹기로 만든 커다란 식수용 물항아리,
지름 높이가 각각 1m 이상, 속에 집어넣는다.
그러면 일주일 이상을 두고 신선하게 먹을 수가 있었다.
소싯적 가끔 물통 뚜껑을 열고 이 우무 가사리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하였다.
네모 반듯한 우무 가사리가 찬 물통 속을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녔다.
어른들한테 물어봤지만 제대로 답을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68년 신병 훈련 시절 3월 입대가 더위가 다가올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그 옛날 진해 경화 극장에서 경화역 올라가는 코너에 여름만 되면 조그만
체구의 할머니 한 분이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계셨다.
몸통만 한 오지항아리에는 헌 군용 모포가 정성스레 둘러싸여 있다.
그 옆 스티로폼 박스 안에는 얼음덩어리가 들어있고 그 위에는 밤새 쑤어온
우무 가사리 들어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콩국에다 우무 가사리를 채 썰어 말아주는 할머니이셨다.
앉을자리도 없어 그냥 서서 마셔야만 하는 난전 영업장이었다.
오후 한나절 천자봉 구보를 하고 이 앞을 지나가는데 할머니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입대 전 한번 먹어본 경험이 있었던 터라 어찌나 먹고 싶었던지,,,,,,,,
돌을 먹어도 소화가 될 것 같았던 배고픈 신병 시절이라 이 할머니의
모습이 며칠간 머릿속을 맴돌았다.
얼마 후 첫 외출, 후반기 특과 교육에서 일등을 하여 일주일간 포상 휴가를
받아 영외로 나서자마자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바로 이 할머니가 장사하셨던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였다.
한 그릇 먹고 또 한 그릇 더 시켜 놓고 소싯적 궁금하던 일을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와, 돈 없나? 외상 할라꼬?"
당시는 돈 없고 배고픈 군인들이 먼저 시켜먹고 오리발 내미는 사례가 많았다
항아리를 들여다보며 다시 물었다.
"우무 가사리가 살았는 기요?"
"눈이 삐었나? 잘 봐라, 이게 물 하고 무겁기가 비슷하니까 물 하고
같이 노는 것 아이가"
"???"
지금 생각하니 우무 가사리의 비중이 물이랑 거의 같아서 가라앉지도
띄지도 않고 물속에 잠겨 있으면서 큰 물통 속에서 일어나는 대류 작용
때문에 꼭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우무 가사리에 대해서 도가 트인 이 할머니가 한때는 나의 교수님이셨던 웃지
못할 지난 시절도 있었다.
더위 조심하세요!
2017년 7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