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욕

by 김 경덕

노욕(老慾)


노욕은 흔히들 人間의 3대 欲求인 食慾, 物慾, 情慾보다 더 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노욕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형태로 우리 같은 노인들의 일상사에서 드러날까?


공자 왈, 군자는 경계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젊을 때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색을 경계해야 하고, 장성해서는 혈기가 왕성하기 때문에 싸움을 멀리해야 하고, 늙으면 기가 쇄약 해지기 때문에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말 사전에는 노욕을 늙은이들이 부리는 '욕심'이나 도를 넘는 '과욕'이라고 하였다.

아무리 노인의 판정기준이 늦어졌다 하더라도 70대 후반이면 자타가 공인하는 노인이 된다.

70대 중반을 넘어서면 기력도 많이 쇄하여 지고, 찾아갈 곳도 점점 줄어들며, 불러주는 사람이나 특히 찾아올 사람은 거의 없어진다.


전을 펼쳐고 판을 깔아야 장사도하고 춤도 출 수 있겠는데 이 판마저도 줄어들고 작아져 버렸다.

동기간이나, 친구지간이나, 심지어 자식들과의 만남도 점점 줄어든다.

함께 할 상대가 있어야 '노욕'인지 '과욕'인지 '탐욕'인지도 털어놓거나 펼쳐 보일터인데 이제는 만남 자체가 귀해져 버렸다.

그래도 연말이 다가오니 탁상 달력의 휑하던 흰 칸들이 몇 군데 까맣게 채워져 있다.

다시 한번 들어다 보니 이 약속들은 대부분이 노인들끼리 모임이다.


과연 올 해는 어떤 노익장들이 어떤 형태의 노욕들을 들고 그 모습을 드러낼까?

지금부터 자못 궁금해진다.


이 참에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드러내 놓거나 경험한 노인들의 노욕들을 한번 형태별로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첫째는 과거지향형 노욕이다.

왕년에, 나 때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남자들의 군 시절 무용담이 대표적이다.

병장이 순식간에 소대장 중대장이 되고 때로는 사단장까지 올라가 자기가 나라를 다 지켰다는 듯이 횡설수설한다. 그러나 남자들끼리는

다 알고 들어준다. 왜냐하면 나도 똑같이 그렇게 하니까.

심지어 고생했던 소싯적 이야기도 엄청 미화시켜 지금의 나 있음을 드러내려 한다. 다 부질없는 노욕의 소재일 뿐이다.


'즐거웠던 그날을 돌이킬 수 있다면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 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아랫것들 한 데서 자주 듣게 되는 꼰대, 라때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둘째는 과시형이다.

오래전 남도 지방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업무차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대부분의 이 지역 사람들이 자기 집안의 선산 단장에 대해 자신이 한 역할을 자랑하였다. 처음에는 무척 의아해했다. 알고 보니 자신의 사람됨과 속한 씨족에 대해 나는 이런 사람이니 인정해 달라는 자기 과시의 한 방법이었다. 노인이 되면 이런 과시 형태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성씨나 선대 행적에 대한 과시, 태어난 고향에 대한 과시, 출신학교나 전공에 대한 과시, 과거 경력이나 경험에 대한 과시, 여기에다 자식 자랑, 심지어 출세한 친구들과의 친분을 들먹이며 자기를 은근히 격상시키고 싶어 하는 졸장부 형 과시도 있다.

과시는 다 허공을 항해 부르짖는 부질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자기 과시는 메아리 되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세 번째는 과장형 노욕이다.

노인에게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어쩌면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최후의 한 방편인 것 같기도 하다.


현역 시절 실버산업에 대한 사업성을 검토한 적이 있다. 먼저 시작한 한 사업장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보았다. 공동생활하는 노인들의 문제점 1위가 놀랍게도 자기 과시용 거짓말이었다.

땅이 100 평만 있어도 만평으로 늘어나고, 아들이 파출소 소장이면 반드시 서장으로 변신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 같기도 해서 기분이 몹시 씁쓸하였다.

과장은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줄이는 것도 과장에 속한다. 노인이 되면 베풀거나 돈을 쓸 때는 대부분 움츠러든다. 자랑할 때는 엄청 부풀렸다가 막상 쓸 때는 냉수 축신이 되어 버린다.

죽을 때 안고 가지도 못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노년기의 시간 관리에도 과장된 모습의 노욕이 나타난다. 70대 후반임에도 바쁜척하는 사람들이 괘나 많다. 존경받는 어느 노교수는 이 나이에 자기 이익이나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인생을 잘 못 산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러면서 내려놓고 물려주고 베풀고 나누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라고 하였다.

바쁜 척하는 것은 자기 방어의 수단이고 서로 간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첩경이라고 하였다.

이 나이가 되면 이미 서로에 대해 판단할 것은 모두 판단하여 각자의 머릿속에 정확하게 각인시켜 놓고 있다. 오직 바람이 있다면 불러주면 얼른 달려가고,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꽃이라도 사 들고 날아서라도 찾아가야 한다.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청하고 지갑은 항상 앞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니면서 내가 먼저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에게 각인되어있는 나의 추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가 있다.


해가 서산에 저문다.

노욕이 커지면 노추가 되고 노망까지 이른다고 하였다.

노욕을 시도 때도 없이 드러내는 떠벌이 노인이 되지 말고 노익장을 과시하는 노인이 되어 보자.

아직 노을이 서산에 붉게 불타고 있다.

어둠이 오기 전에 내가 버린 노욕이 내가 베푼 나눔으로 변하여 저 노을이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다 같이 실천하며 행동하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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