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는 해외 출장이 비교적 잦은 편이었다. 미주나 구라파 지역을 갔다 오면 Jet lag 현상이 잠깐 나타났지만 금방 사라져 버리곤 했다. 이제는 나이 탓인가? 벌써 한 주가 지났는데도 아직까지도 새벽에 잠을 설치며 헤매고 있다.
마침 월드컵 축구 브라질과 16강 전이 새벽 4시에 예정되어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평소 막내 동생처럼 가깝게 지내온 후배 부부가 경기를 함께 관람하자며 서울에서부터 먼 길을 달려 내려왔다.
기대가 너무 컸었나?
누구를 탓할 겨를도 없이 냉정한 현실은 완전한 실력차로 드러났다.
남은 것은 심한 허탈감뿐이었다.
이럴 때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은 일탈이다. 아내가 눈치를 채고 강릉 즉 동해안으로 가자고 제안하였다. 후배 부부도 흔쾌히 동행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서둘러 겨울 나들이 채비를 하고 핸들을 잡으니 6시가 지났는데도 사방은 아직도 깜깜한 밤중이다.
눈발마저 오락가락한다.
가고 올 눈길이 걱정스러워 대관령을 넘어가기가 싫어졌다.
오래전 이곳 눈길에서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오늘의 목적지로 경북 예천에 있는 회룡포와 삼강나루로 낙점을 하고 액셀을 힘차게 밟고 출발하였다.
이곳에 대한 자세한 여행안내 기사가 얼마 전 어느 잡지에 실렸다.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스마트폰에다 맛집까지 포함하여 자세히 메모해 두었다.
회룡포
문경새재를 지나고 나니 하늘은 제법
환해졌지만 눈발은 조금 더 두터워졌다.
조심스레 핸들을 잡고 지방도로로 올라서니 인적이 거의 없다. 이른 아침 첫눈 위에 첫 흔적을 남기면서 지나가니 마치 우리나라가 월드컵 16강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것처럼 기분이 짜릿해진다.
주변의 산하가 모두 흰 속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적당히 내린 눈으로 아직은 얇게 덮여 있어서 산하의 속살이 군데군데 들여다 보인다.
회룡포가 건너다 보이는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3시간여를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9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다.
강 건너 회룡포 마을은 눈발 속에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수줍은 모습으로 얼굴을 반쯤 감추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소백산 국망봉(1420m)에서 남으로 발원한 물줄기가 부석사를 지나고 영주를 적신 뒤 여기까지 흘려오면 내성천이 된다. 예천 양반 흉내 낸답시고 여기서 한참을 쉬어가다 그만 물줄기가 360도 꺾기고 말았다. 그 속에 남겨진 땅이 마치 육지 속 섬처럼 오지가 되어 버렸다. 물줄기가 수 천년 휘감아 돈 비룡산 자락은 절벽이 되고 반대편 강가는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되었다.
여기가 바로 回龍浦이다.
용은 집 떠난 지 이미 오래고 맑은 내성천 물속에는 쏘가리와 은어가 그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접하는 기막힌 우리의 산하다.
이곳에서 눈발이 휘날리는 강가를 우산을 들고 아내와 함께 말없이 걸었다. 오늘 아침 걸어본 이 길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삼강나루
왜 삼강일까?
나루터에서 바라보니 여기는 북쪽에서 흘러온 내성천과 동쪽 안동지방에서 흘러오는 낙동강 원류가 합류하여 다시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세 물줄기가 바라다 보인다. 그래서 삼강(三江)인가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주막집은 예천 땅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 나루터에서 북으로 바로 건너면 점촌, 지금은 문경시이고 동으로 건너가면 똑같은 예천 땅 용궁면이다.
이 나루터에 도착한 과객들이나 보부상들은 어느 방향으로 건너갔을까? 상상을 해본다.
나 같이 출세길을 찾아 떠난 사람은 한양으로 간답시고 북으로 건너갔을 것이고 아마도 님 찾아 길을 떠난 사람은 동으로 건너갔을 것이다.
회한만 잔뜩 쌓인 우리의 북향 길은 이제는 미련만 잔뜩 남아있을 뿐인데........
만약에 나에게 다시 길 떠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북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지 않고 동쪽으로 가는 나룻배를 탈 것이다.
이유는 묻지 마라.
세월이 지나고 나니
돈도 명예도 모두 다
흐르는 저 강물과 같더라.
흘러가면 모두 다 지워질
우리들의 수다스런 흔적들
사라지고 지워질 하루보다는
조금씩 익어가는 하루를 위하여....
마지막까지 가슴에 안고 가는 것은
정이라고 했나? 사랑이라고 했나?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가슴에 안고 갈,
정을 나누고 싶은 사람을 찾아,
사랑을 함께 노래하고 싶은 님을 찾아,
이번에는 반드시 동쪽으로 건너가는 나룻배를 타고 싶다.
달마가 동쪽으로 갔듯이...
사실 삼강나루터를 돌아보고 많이 실망했다. 관광지 개발도 좋고 정화도 좋다. 왜, 순박한 시골 처녀 얼굴에다 파마시켜놓고 분까지 바르게 하고 거기다가 반질반질한 구두까지 신겨 놓았나?
여기 오면 투박한 주막집 아줌마가 따라줄 막걸리 한 대접 마실 것을 고대하고 찾아왔는데 싸늘한 강바람에 차가워진 실망만 한 대접 마시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P.S
회룡포와 삼가 나루터를 관리하시거나 감독하시는 담당 공무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