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남긴 말인지 모르겠으나 이 혜자(慧者)가 마치 나를 두고 한 말 같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무척 좋아한다.주어진 상황에 따라 '바다'만 살짝 바꾸면 어디를 가던 무엇을 보던 모두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남도를 오가는 길에 대천을 지나칠 때면 이런 우스개 소리를 자주 하였다.
"저는요, 여기를 지나갈 때마다 차에 내려 큰절을 합니다."
"왜요?"
"제 마누라님 고향이니까요."
이 대천에 오늘은 가벼운 차림으로차를 두고 혼자서 열차를 이용하여 내려왔다.
마침 하루 일정이 비었길래 오랜만에 장항선을 이용한 대천행이다.
자기는 '가라고 해도 안 갈 것이다'라면서 아내가 투정조로 비꼬았지만 그래도 고맙게 수원역까지 태워 주었다.
미리 예매해 둔 9시 51분 수원역발 익산행 새마을호를 타니 정확하게 11시 54분에 대천역에 내려 주었다. 6,70년대의 장항선과는 격세지감이다. 당시 장항선 선로는 단선이었다.
상하행선 열차가 교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였다. 선로의 곡선반경이 작아서 열차가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조금 뒷칸에 타고 갈 때는 철길의 급한 커브 때문에 앞에서 객차를 끌고 가는 기관차의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지금은 선형도 개량되고 선로가 복선이라 옛날 경부선만큼 열차가 속도를 내며 싱싱 달린다.
한 나절 더 걸렸던 이 길이 이제는 2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지나치는 차창 가는 입춘을 막 지난 충청도 내면(內面)의 산야가 온기를 가득 품고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드러운 능선과 마을들의 스카이 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가냘픈 나무들의 끝가지는 새봄을 노래할 준비에 한창이다. 한뿌리에서 자랐던 다른 뿌리에서 자랐던 상관없이 하늘 영역 다툼 없이 무척이나 평화롭게 어깨동무를 하고 조용히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의 노래가
이렇게 들리는 곳
여기는,
사랑이 있어서
나는야, 좋더라
오! 예 예 예'
이동원의 노래가 그대로 귓전에 들려온다.
조금 과장하연 인천 공항 같은 신축 대천역사를 빠져나오니 대천항행 버스 안내 표시가 바로 눈앞에 들어왔다.
10분 간격이다. 처음 타보는 최고급시골버스다.무소음, 무공해, 저상형 최고급 신형 전기버스였다.타고 온 새마을호도 만족도가 기대 이상이었는데 시골 버스까지......
그래 맞아! 즐기는 자, 길 떠난 자 만이 차지할 수 있는 소유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20여분 만에 대천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종점인 대천항까지 타고 가려고 하였는데 백사장을 갑자기 걷고 싶어 대천 해수욕장 입구에서 내렸다.
철이 아니라 손님 잃은 대천 목간통(?)의 크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마침 썰물 때라 모래사장에 들어가서 물가를 따라 무작정 바닷가를 걸었다. 겨울바다 답지 않게 바다가 조용하다.
바닷바람이 아직도 차가워서 인지물가에 나와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갈매기만 끼리끼리 모여 앉아 지들끼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혼자걷기가외로우면
우리와함께 노래 부르고 가세요.'
난 음친데
대신너네들이랑 함께 날고 싶어
왜요?'
높게 날면 더 멀이 볼 수 있으니까.
갈매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텅 빈 백사장이다.
외롭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 갈매기가 곁에서길동무해 주니 발걸음 훨씬 가볍다.
그 누구와 나눌 필요도 없고,눈치 볼 필요도 없다.
갈매기가 양보까지 해주니모두 다 내 것이되었다.
그래서 더 좋다.
한 시간 남짓 물가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니 짚 라인 하선장이 눈에 들어왔다. 대천항 북쪽 끝 모노레일 로선 밑으로 난 소롯길을 따라가다 조그마한 돌머리를 돌아서니 작은 마을이 있었다. 마지막집앞마당을 빠져나가니 바로 대천항에 인접한 어시장이다. 대천항 방파제에 들어가 잠시 한숨을 돌린 후 붉은 등대를 등지고 겨울바다의 지평선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시계가 벌써 오후 1시 반을 넘어서고 있다. 허기를 안고 활어시장에 들어갔지만 제철이 아닌지라 구미를 당기는 생선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체격 좋은 낙지 몇 마리와 심해에서 채취한 섭 조개 그리고 갱개미 두 마리만 노획하여 포장을 하였다. 해물 칼국수 한 그릇을 후딱 해 치우고 미리 예매해 둔 오후 3시 5분발 용산행 새마을 열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대천역으로 다시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