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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Mar 20. 2023

군자란

  군자란

나이 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다.

임플란트로 교체한 나의 치아다.

마지막이었으면 좋으련만 이번에 추가하는 두 개를 더하면 지금까지 무려 17번 째다. 1986년에 시작된 이 공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마치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우디의 파밀리아 성당처럼 완공할 날을 기약할 수가 없다.


아침부터 30분간 악을 쓰며 입을 벌렸더니 기운이 빠져 버렸나 보다. 지하철에 내리니 화창한 봄 날씨라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더니

집까지는 약 2000보, 1,5km 남짓인데 오늘은 이마저도 힘이 들었다. 등에 땀이 제법 많이 배어 나와 있다.

세월이 여류 하니 나이는 올라가지만 氣가 빠지는 게 실감 나게 느껴진다. 기 뿐만 아니라, 맥도 빠지고, 힘도 빠지고, 어깨는 처지고, 눈마저 침침해진다.

이러한 나의 노쇠 현상과는 반대로 해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君者가 내 곁에 하나 있다. 


제법 온기를 느낄만한 두터워진 한낮의 봄 햇살이 베란다에 가득 차 있다. 며칠 전부터 피기 시작한 이 오늘 만개하였다. 바로 군자란이다.

이 군자란은 장모님이 직접 키우시다 시집간 딸 신혼집에 처음 다니려 오실 때 가져오신 화분이다.

듬직한 군자란 잎처럼 당신 딸 잘 보호하라고 무언의 의사 표시를 이 군자란으로 하셨나 보다.

이 화분과 함께 한지가 벌써 48년 차다. 지금은  분이 두 개인데 하나는 아들 분이고 또 하나는 아버지 분이다. 2대가 함께 살고 있다.

아마도 갈이를 10번 이상한 것 같다. 처음 군자란의 10대 이상 후손이 되는 셈이다. 그동안 수 차례 이사를 할 때도 이 분만 소중히 챙겼다. 특히 두 번의 해외 근무 때도  이 분만은 안전하게 보관을 시킨 후 떠났고 돌아와서는 다시 돌려받았다.


이제는 내 나이가 이 분을 우리 집에 가져오실 때 장모님 연세보다 어언 십 년이나 더 많아졌다.

이미 떠나시고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군자란 꽃만 보면 매년 장모님 생각이 난다. 묘한 교감과 함께 자꾸만 과거로 회기하고 싶어 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생각은  더 깊어간다.


군자란은 봄이 돌아오면 다시 꽃을 피우지만 우리 인생의 봄은 단  번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 피운 꽃은 과연 무슨 꽃이었을까?

꽃잎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무화과 꽃이었었나?  아니면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뭉그적거리며 기다리는 용설란 같은 존재일까?

비록 화려한 꽃은 아니었을지라도 꽃을 피운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꽃이 후에 어딘가에 작은 열매도 하나 정도는 려 있을 것이다.

보살피지도 챙겨보지도 않은 나의 작은 열매

과연 어떤 모습일까? 향기를 피우며 을까?

아니면 썩어가고 있을까?


더 늦기 전에 어떤 모습인지 이 열매를 다시 한번 챙겨보아야겠다. 먼지를 털어내자.

더 맑고 좋은 향기  내 이웃과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넓게, 더 멀리 번져나갈 수 있도록 살아가려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다시 시작하자.

아직도 해야 할 일이, 가야 할 곳이, 만나야 할 사람이 많이 있다. 비록 나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찾아가야겠다.

어느 가수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익어간다'라고 노래하였으니까.

늙지 말고 익어 가는 열매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래하며 살아가는 바보가 되어보자.

음치면 어때!


   2023,  3,  20

이버지 군자란과 아들 군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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