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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May 30. 2024

떠나가는 봄

 봄을 배웅하며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소리 없이 다가와 스치듯 지나갈 줄 알았는데 떠나가는 마무리 행차가 매우 요란스럽다. 마치 시장구경 후 귀궁하는 페르시아 여왕의 행차  같이 아련한 피리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하늘은  머릿구름으로 곱게 단장을 하고 삽상한 공기는 싱그럽다 못해 오히려 코를 괴롭히기까지 한다. 서편 하늘에 뭉게구름이 서서히 피어오르더니 나지막이  각자 자리를 잡는다. 배수진을 친 푸른 하늘은 가을처럼 깊고, 높고, 또 푸르다.


라일락 향기 사이로  각가지 산야초 꽃들이 멋을 부리며 여기저기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봄의 향연이다.

담장의 장미꽃이 줄타기를 하니 먼저핀 찔레꽃은 일 나간 우리 누나 마중을  나가고 보이지 않는다. 그 틈에 시샘 많은 망초꽃이 여기저기에 나타나 분탕질을 하고 있다. 나도 꽃이라고... 그래도 귀엽다.


비 끝 뒤 먼산이 오랜만에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눈은 신록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간다. 그동안 형광 빛에 혹사당한 눈동자가 자연의 초대에 춤을 춘다. 벌써 까맣게 익어버린 체리는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하다 땅에 떨어지자마자 무참하게 짓밟히어 볼썽사나운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불쌍한 봄도 떠난다.


우리 아파트 단지 중앙로의 느티나무 가로수는 스스로  만든 터널로 한 낮임에도 불구하고 초저녁 같은 어두움을 선사한다. 귀갓길은 어느새 명품 길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주문한 뜨거운 커피 한잔을 들고 집으로 가는 길은 천상의 계단 같이 아름답다. 마치 초라한 촌노가 막강한 군대의 열병을 받으며 지나가는 기분이다. 왠지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절세미인인 계절의 여왕 얼굴을  마주 보기가 부끄러워서일까? 눈길을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옮기니 점점 속도가 더디어진다.  

                           

비록 자연이 내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향기를 온전히 구분하지 못해도 마음만은 이 계절이 주는 모든 것을 다 품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지니 금방 마음이 따뜻하게 달아오른다.


신선한 공기, 따뜻한 햇살,  사랑하는 이의 웃음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 이곳에  하늘의 축복으로 나를 찾아왔다.

만났다 그리고 보았다.

느꼈을 때, 눈이 마주쳤을 때, 얼른 주름진 내 손 내밀어 너의 손 마주 잡고 저 구름을 타고 푸른 하늘을 넘어 천상으로 끝없이 날아다니고 싶다.


     2024, 5, 28

         가는 봄을 배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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