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가족이 함께한 생일 파티가 어젯밤 딸네 집에서 있었다. 아들 딸 내외가 모두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며칠 앞 당겨 미리 한 것이다.
딸이 정성스레 생일 파티 음식을 집에서 직접준비하였다. 정성이 듬뿍 들어간 흔적을 눈으로, 맛으로 충분히 보고 느낄 수가 있었다.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였다. 차린 음식 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여수산 갯장어(하모) 요리다. 환상적인 칼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갯장어는 잔뼈가 너무 많아서 포를 떠서 1 내지는 2mm 간격으로 칼집을 넣어야 제대로 먹을 수 있다.
'여수 아빠다!'라는 멋들어진 상호로 등록된 집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하였다고 한다. 기발한 상호 선택이다.
옛 어른들의 관습으로는 생일 음식은 미리 준비하여 먹을 수는 있지만 지난 후에는 나누어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마도 지난 후에 나누어 먹는 제사 음식과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생일은 복 더위에다 장마철 막바지인 7월 하순이다. 13살 때부터 객지 생활을 시작하였다. 여름방학을 한 후 집에 돌아가면 항상 생일날이 지난 후가 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어머니의 생일상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몇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주셨지만 생일상의 대표 음식인 미역국은 생일날이 지났기 때문에 항상 빠져 있었다. 객지에서 남의 집 밥을 먹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집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엄마손 미역국인데도......
쇠고기가 귀한 시절이라 남도 갯가 사람들은 생일상 미역국을 가자미나 광어를 쇠고기 대신 사용하여 끓였다.
하루 동안 물에 불린 미역에다 참기름을 듬뿍 넣고 살짝 덖은 다음 큼지막한 가자미를 토막 내어 넣고서는 밤새 끓였다. 미역은 충분히 물러지고 도다리는 뼈째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연해진다.
요즈음 이와 비슷한 미역국 전문 음식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번 들어가먹어 보았지만 옛날 그 맛이 아니었다.
그다음 생일상에 항상 오르는 음식은 잡채와 생선 전이다. 잡채는 고기가 전혀 들어 가지 않은 요즈음으로 치면 완전 웰빙 음식이다. 그러나 생선 전은 기대를 해볼 만하다. 남도 사람들은 서울처럼 생선 전을 포를 떠서 부치지 않고 통째로 부친다. 작은 생선 주로 가자미나 볼락 등을 내장만 제거하고 치자물을 곱게 입힌 후 뒤집어 놓은 솥뚜껑에다 기름을 충분히 올린 후 부친다. 잘 부쳐진 생선 전의 최고 일미는 묘하게도 지느러미 부분이었다.
딸이 아침부터 준비하였다는 갈비찜과갯장어 탕수 외 다른 세가지 요리는 생소한 양식 요리로 와인과 함께 먹기에는 일품이었다.
옛날 어머니께서 해주신 생일날 음식과 비교해 보니 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엄청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음료는 감주(단술) 대신 며느리가 가져온
나파밸리 최고의 화이트 와인이 대신하였고
생일떡은 인절미 대신 치즈 케이크가 대신하였다.
'아 세월은 잘 간다, 나 살던 곳 그리워라'
이 노래가 나도 모르게 한숨처럼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보니 금년이 나의 희수(77세) 생일이다.
다음은 미수(88세), 마지막은 백수(99세)다.
은근히 미수까지 살아 있기를 기대해 보았다. 손주들에게 희수의 한자 뜻풀이를 해주며 미수 뜻 까지도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