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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Sep 04. 2024

반야사 단상

  황간 반야사


반야사는 연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으나 연잎 같이 넉넉한 마음씨를 가졌다. 연잎 속의 물방울처럼 몰래 숨어 들어가 하룻밤을 뒹굴었는데도 아무런 흔적이 없다. 작년 폭우 때 절 앞으로 흘러가는 구수천이 범람하여 할퀸 수마의 상처가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있다.


이 절은 백화산을 주봉으로 삼고 있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내려오다 태백에서 분기되어 방향을 기울인 후 소백, 월악, 속리산에서 한 번씩 솟구쳐 올랐다가 추풍령을 지나면서 이곳 백화산(948m)에서 한숨을 돌린다. 이후 황악산, 민주지산, 덕유산, 자리산으로 이어져 내려간다. 그러니까 백화산의 높이는 1,000m 고개를 넘지 못했지만 소백산맥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반야사는 천년고찰 치고는 눈여겨 볼만 한 문화유적이 별로 없다. 남반도 지형의 허리 부분에 자리 잡고 있어 각종 전란 때마다 화를 면하지 못하였다. 현재 가람의 대부분은 6.25 때 소실되었지만 다시 복원되거나 증축된 것이다  특히 6.25 동란 중 미군에 의해 주민들이 집단 학살을 당한 노근리 참사의 현장도 바로 이 사찰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다.

본전에서 구수천을 따라 상류로 약 300m 정도 올라가면 문수대와 문수암이 있다. 이곳은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 유명 사찰을 유람할 때 여기서 목욕을 한 곳이다.  설에 따르면 세조가 이곳에 당도하였을 때 지혜의 문수보살이 나타나 세조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절 이름을 지혜의 불경인 반야심경을 본떠서 "반야사"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이 사찰의 전체 분위기나 심지어 주변의 자연경관마저도 지혜의 기운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부담 없이 편하게 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쉼터 같은 그런 분위기다. 마치 외갓집에 온 듯 정감이 가고 편안했다.

그래서인지 이 절은 전국적으로  템플 스테이 마니아들에게 소문이 나 있다. 입소자는 어떤 간섭을 받지 않고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도 있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도 있다. 공양 시간만 잘 지키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와 모두 다 해도 되는 그런 선택의 자유다.

입소 후 이 설명을 듣고 나니 긴장했던  마음이 다소 풀리며 조금 편안해졌다.


27년 전 남도의 한 사찰에서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예불, 다도, 탑돌이, 공양, 울력등 정해진 Program에 모두 참여해야만 하는 일정이었다. 특히 오체투구인 108배가 힘들었다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에는 새벽 5시 예불만 참가하기로 하였다. 시간에 맞추어 단단히 마음 준비를 하고 대웅전 앞으로 나가니 벌써 큰 스님께서 앞마당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을 하고 계셨다. 조용히 한 발치 뒤에 가서 섰다.

나 혼자 뿐이었다. 5시가 되니 스님은 손 전등을 켜고 절 전체를 한 바뀌 돌기 시작하였다. 먼발치로 따라갔다. 아직도 어두운 사찰의 새벽을 간간이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가 깨우고 지나갔다.

새벽밤하늘에 별이 쏟아진다. 지혜의 별이다.

잠자는 중생의 머리 위로 무수히 쏟아져 내린다.

별은 공평하게 모든 중생들에게 똑 같이 내려온다.

다만 세상에는 별(경이 말씀)을 받든 자 즉 불심이나 믿음을 키우는 자와 아직도 잠들어 있는 자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항상 깨어 있으라!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


해우소 앞을 지나니 가벼운 인분 냄새가 코를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역겹게 느껴지는 냄새가 아니다.

이 냄새를 맡고 나니 이상하게 집에 두고 온 가족이

생각났다. 순간적으로  아내와 함께 다시 이곳에 한번 더 와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별이 쏟아져 내린다.

내일도 같은 별이 쏟아져 내릴까?

오늘의 물소리도  들려온다.

내일의 물소리는 더 클까 아니면 더 작을까?

"반야, 반야, 반야사 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내 귀에는 스님의 독경 소리가 이렇게 들려왔다.


어떤 종교던 믿기 시작하면 새로운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용맹정진하며 이 길을 동참하여 나아갈 때 우리는 때때로 많은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낀다.

제대로 자신신앙이 정진이 되지 않거나, 고난이나 어려움에 처하거나, 세상사 달콤한 유혹을 받았을 때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가 빈번히 일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계속 걸어가야 한다. 별 중에서 새벽별은 더 밝고 맑다,  

무수한  별들이 내 머리 위에 내려와 앉는다.

별이 모아지니 새벽빛이 된다.

오늘 가야 할 길도 보인.

새로운 음성이 다시 들려온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의 앞 길을 항상 인도하리라!"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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