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연배요, 대학 동기이기도 한 작가 김 훈의 최근 산문집 '허송세월'에서 노환에 대해 이렇게 기술해 놓았다.
'의사가 말하기를 늙은이의 병증은 자연적 노화 현상과 구분되지 않아서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늙은이의 병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딱히 병이라고 할 것도 없고 병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듣기에 편안했다.
늙음은 병듦을 포함하는 종합적 생명 현상이다'
쉽게 풀어쓰면 늙고 병듦은 극히 자연스러운
생로병사 현상이다.공감이 되지만 읽고 나니 왠지 씁쓸했다. 지금까지는 동년배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건강한 편에 속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때론 은근히 자신의 건강을 과시하기까지 하였다.
이 철없는 행동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특정 신체 부위의 약점을 숨기고 살았다는 말과도 통한다.
애들의 성화에 떠밀려 지난주 종합 검진을 받았다.
2년 만이다. 지난 검진까지는 검진 결과를 인쇄물로 받지 않고 E-mail로 받아 보았다. 해가 거듭될수록 이곳저곳 의사의 소견이 불어나니 가족에게 까지도 검진 결과물을 보여주기가 싫었다. 이번 종합 검진에서는 검진 중 청력검사에서 오른쪽 귀에 난청이 진행되고 있다는 즉석 판정을 받았다. 정밀 진단을 받아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검진 결과를 인쇄물로 받아야만 한다.
어떤 병이든 모르고 살아가면 일상이 비교적 편안하지만 중병이 아니더라도 일단 지병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삶이 왠지 불안해진다.
사람의 욕심은 낼수록 더 커져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싶어 지고.
미인은 더 미인이 되고 싶어 한다.
건강한 사람이 더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 다 공감하는 인지상정의 논리다.
그러나 반대 논리에 대하서는 극히 민감하다.
말인즉 누구나 병이 깊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이 글을 읽고 돌이켜 보니 나의 이목구비는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진단받은 귀(이)의 난청은 마지막으로 찾아온 고마운 손님이다.
눈(목)은 난시와 근시로 오래전부터 안경이 신체 일부가 되었다. 몇 년 전에 갑작스러운 망막 출혈로 상당기간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아직도 조심스럽다.
입(구)은 나의 나의 신체부위 중 최고의 사치품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현재 입 속에 강남 아파트 한 동이 들어와 살고 있다. 8여 년 동안 뜨거운 동남아와 중동 지역에서 지사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니 이빨이 전부 흔들리고 있었다. 치과의 종합 검진 결과는 이대로 두면 2년 내에 이 전부가 빠진다고 하였다. 잇몸 전체에 대한 풍치 수술과 당시 국내에 도입되어 소개되기 시작한 임플란트를 5개 심는 시술 비용을 합쳐 무려 이천육백만 원의 견적이 나왔다.
당시 대치동 은마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31평 매매가가 이천팔구백만 원 전후였다
이후 작년까지 무려 6차례 더 임플란트
시술을 하여 지금은 총 17개의 가짜 이빨이 입안에서 안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입속에 아파트 한 채가살고 있다고 자랑할만하다
코(비)는 젊은 날 축농증 수술을 받았다.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아르바이트 때문에 바로 귀향하지 못하고 혼자 서울에 남았다.
가정교사를 한 후 받은 돈으로 명동에 있는 성모 병원에서 수술을 하려고 예약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수술 수속을 밟고 나니 간호사가 보호자를 찾았다.
혼자 왔다고 하였더니 이 수술은 당일 퇴원이라 보호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또한 보호자의 수술 동의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일반 전화도 귀했던 시절이라 마땅히 연락을 할 만한 곳도 없었고 가까운 친구들은 모두 고향에 내려가고 없었다. 수술 후에는 바로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간다고 하였더니 간호사는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어쩔 수 없었던지 담당 의사와 잠시 상의한 후 간호사가 대신 나의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덕분에 수술을 무사히 끝낼 수가 있었다. 66년도 당시는 살기는 어려웠지만 인정은 메마르지 않은 그런 시절이었다. 두 시간 정도 수술이 끝난 후 마취에서 깨어나니 친절한 간호사 언니는 혹시 귀향길에 출혈이 될 수도 있다며 구급용 붕대와 몇 가지 지혈재 등 상비약품을 챙겨 주었다. 그리고 사후 처치를 할 부산에 있는 이비인후과도 소개해 주었다. 이중 마스크를 하고 서둘러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나갔다.
이 수술을 받은 후에는 하루 정도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열차 의자에 장시간 앉아만 있었기 때문인지 열차가 대구를 지날 때쯤 우려했던 수술 부위가 터지고 말았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지혈을 하고 안정은 시켰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정말 무모한 짓을 했다. 그것도 열차 안에서.....
다행히 지금까지 축농증이 재발하지 않아 이 코로 세상 각처로 맛있는 냄새나는 곳을 찾아 지금도 열심히 돌아다닌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나의 이목구비가 성한곳이 정말 하나도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늙고 병들어 가는 '종합적 생명현상'인가?
이렇다고슬퍼할 일도 아니고 방심할 일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언젠가는 맞이할 그날까지 내 손으로 식사를 하고 내 발로 우리 집 문턱을 자유스럽게 넘나들게 해 달라고 나는 매일 아침 하나님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