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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덕 Sep 26. 2024

한양도성길

      성북동 한양도성길


가을이 왔다.

작년에 갔다가 다시 온 가을이 아니다.

새 가을이다.

새색시가 몰고 온 날씨가 화창하니 코끝이 쨍하다. 심장이 요동친다.

하늘이 오랜만에 고개를 높이 쳐들고 민 낯을 드러냈다. 고운 민얼굴에 분칠을 해 달라고 유혹한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신분당선을 타고 신사역에

내려 3호선을 갈아탔다. 충무로역에서 다시 환승한 후 삼선교(한성대) 역에 내렸다. 바로 성북동 한양도성길로 발길을 옮겼다.

한 낮이라 골목길도 한산하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 한 마장 정도 오르니

한양도성의 석축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뭐야?

옛 도성 위에 큰 집이 있다.

얼마 전까지 시장 공관터란 안내문이 있다.

교회도 있고, 학교도 있다.

심지어 제법 규모가 큰  아파트 단지도 있다.

옛 석축을 가리거나 덧 쌓기를 해 놓았다.

일본식 쌓기도 있고 마구잡이로 쌓은 것도 있다.

이게 바로 꼴불견이다.

바라보는 내 마음이 더 불편하다.

이곳에 의도적으로 성을 허물고 집을 짓게 한 일본*은 차치하고서라도  얼마 전까지 이곳 공관에 거주하였다는 전임 서울시장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들락 거렸을까?

성을 깔아 뭉개고 앉은 교실에서 역사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쳤을까?

성 위에 세워 놓은 높은 십자가는 하늘 가는 길인가요? 극일 하자는 기도인가요?

아니면 친일 하자는 기원인가요?

성벽을 따라 신축된 이 아파트는 누구의 힘으로 건축허가를 받았나요.

아, 3.1 운동 민족대표 33인들이 모두 재가(?)를

해 주었다고 하네요.

훼손된 성곽을 보고 나니 기분이 영하로 떨어져 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당초 와룡 공원까지 가려든  계획을 포기하고  한용운 시인이 생전에 거처했다는 심우당 가는 길로 꺾어서 내려와 버렸다.

나도 덩달아 "님의 침묵"이다.

한양 도성길을 금년 가을에 한번 완주해 보려고 내심 계획을 했었다. 첫날부터 이 계획을 과감히 수정하거나 포기를 해야만 할 것 같다.


북악은 아직도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 손길이 닿은 곳마다 왜 이리 누추한 모습만 눈에 들어올까요?

아쉬운 금년 가을 첫나들이다.

푸른 하늘아,  미안해!


  2024,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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