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농다리
물도 심술이 있다.
그것도 태어나면서부터 쉼 없이 땅을 파 헤쳐 온 굉장한 심술이다.
물의 심술이 땅을 깊이 갈라놓으면 건너갈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소통이 끓어진다. 사람들은 소통이 줄어들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눌 기회가 적어지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오가기가 힘들거나 불편해지면 가교를 놓는다.
그것을 큰 물 위에 놓으면 대교가 되고 실개천 위에다 놓으면 징검다리가 된다.
우리는 이런 가교를 통해 인근 지역 간이나 개인 간에 지속적으로 물자교류나 소통을 이어간다.
소통을, 만남을 가로막는 것은 비단 물 뿐이겠는가? 요즈음 같이 장기간 지속되는 폭염도 만남을 가로막고, 빈번히 쏟아지는 폭우 역시 소통을 가로막는다.
금년 여름에는 이런 날이 깊어가니 만남 자체도 줄어들었다. 언제 한번 얼굴을 보자는 친구의 형식적인 전화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대신 여기저기 SNS 상에 올려놓은 이상한 커피잔들만 허망하게 돌아다닌다. 서글픔이, 답답함이 덩달아
그림 속 커피잔 위로 함께 피어오른다.
오늘은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폭염을 정면으로 맞서 보기로 했다. 직접 찾아 나선 곳은 진천에 있는 '농다리'다.
20대 학창 시절부터 고속버스를 타고 지나다니면서 먼발치로 내려다보기만 했지 직접 대면해 보지는 못했다.
입구를 따라 들어서니 잘 정비해 놓은 주차장 너머로 '생거지 진천'이라는 큰다란 글씨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미호천을 가로지르는 농다리 건너편에 있는 인공폭포 위에 세워 놓은 것이다. 주변의 과장된 인공 구조물이 정작 주인공인 농다리를 오히려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안타깝다.
이 다리는 고려 초 또는 중기에 처음 조성되었으며 그동안 수차례 개보수를 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다리 모습은 약 600년 전에 보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돌만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축조방식으로 교각은 28개이고 다리의 길이는 93.6m이다. 각 교각의 폭은 3.6m, 높이는 1.2m이고 물이 지나가는 교각사이의 간격은 0.8m 내외다. 다리의 전체 모양과 물이 마치 대바구니 틈을 빠져나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농다리라 하였으며 우리나라 징검다리 중 규모가 제일 크다.
교각마다 크고 작은 돌로 정교하게 짜 맞추기를 해 놓았는데 오랜 세월 물살을 견디어 내며 닳고 닳아 외관이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보인다. 어려운 세월을 견디며 생명을 이어 온 이 땅의 민초들처럼 용케도 크고 작은 물길을 잘도 견디어 냈다.
물소리가 때론 울음소리로 때론 웃음소리로 번갈아 가며 들려온다. 그 속에 함께 있어야 할 아가의 울음소리가 잦아진 지 오래되어 아쉽다.
이 또한 안타가운 일이다.
등 뒤에 한 짐 가득 찬 지게를 지고 힘들게 이 다리를 건너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내는 갈대 잎 바람개비를 돌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뒤 따라온다.
교각 사이를 그것도 연결되지 않은 교각 사이를 무거운
짐을 지고 무사히 건너뛸 수가 있을까?
지금의 체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다.
소통의 원천은 체력이고 건강인데 벌써 내가 이렇게 허약해져 버렸나?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물을 건너야 하는 징검다리 놀이는 이제 그만해야겠다.
다리를 건너 말끔하게 단장해 놓은 평탄한 메타스쾌아 산책길로 들어서니 비로써 마음이 펀해진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몸을 땀으로 적시기 전에 조심조심하며 그늘을 따라 걸어간다.
아내가 저만치 잰걸음으로 앞서간다.
길고 짧은 것은 저 농다리를 다시 건너봐야 아는데.....
당신은 아직도 느림의 미학을 모르는가?
늦게 시작한 자가 먼저 된다는 인자의 가르침도 있는데...
강가 갈 숲의 속삭임도 들어보고,
미루나무 가지 위의 쓰르라미가 짝을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어보자.
한번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흰 도화지 같은 이 길을...
놀며 쉬며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자.
지난날 어느 소통의 다리 위에서 만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저 농다리를 동행해서 다시 건너가야 하는 운명이니까.
같이 가자! 천천히 가자!
2025, 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