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가 가끔 모든 것이 지치고 하기 싫어질 때가 생긴다. 요 며칠 감기로 일주일간을 고생하였다. 온 가족이 감기에 정말 힘들었다. 아프니까 좀 나아지면 하기로 자신과 타협을 했다. 앉아있으면 머리가 띵해지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자고 싶기만 했다. 그러다가 의자에 앉아서 무작정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끝없이 막막해 보이는 계획, 다가오는 전시 일정과 논문 초안.. 모든 게 토하고 싶을 정도로 부담으로 밀려왔다. 일정은 촉박하게 다가오는데 진행되는 대로 잘 안 되는 것 같다. 생각의 정리가 잘 안되었다. 이것저것 열심히 정리하고 싶은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우선순위가 뭔지 헷갈리기 시작하면서 풀이 죽어버렸다. 이렇게 난잡하고 복잡할 때 난 슬럼프에 빠지는 것 같다.
항상 문제는 그것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걸 하면 어떻게 되지? 이 작품이 후에 도움이 될까? 센세이셔널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 시대에 유행하는 그림 한 점을 그릴 수 있을까? 팔리는 작품을 그려야 할까 사상이 있는 작품을 그려야 할까? 사상이 있는 작품을 한다면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는 그런 철학이 있는 작품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있는 작품의 방향성이 시대와 잘 맞는 그림인가? 정말 나를 대신할 정도로 잘 맞는 그림인가? 내가 내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가? 작품은 너무 고립된 생각이 아닌지.. 혹은 너무 이것저것 산만해서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이 가득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난 이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간단히 이렇게 한다.
노트에 대충 끄적이는 중..
간단히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
첫째, 커피를 한잔 마신다. 물을 끓이며, 커피를 타면서 씁쓸한 향과 구수한 향을 맡으며 잠시 한 박자 쉬어 보는 것이다.
둘째, 창문을 열어 집안 공기를 바깥공기와 바꾼다. 나도 모르게 공기가 탁해지만 멍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다.
셋째, 생각 없이 책을 고른다. 그냥 읽어나간다. 휴대폰 만지면서 단순 검색보다 능동적인 생각을 하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을 준다. 눈 앞에 보이는 책 아무거나 읽고 싶은 것을 읽어보는 것이다. 메거진도 좋고 육아서적이나 패션 관련 책도 괜찮다.
넷째, 유튜브 채널은 보지 않는다. 특히 슬럼프 때, 목적 없이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건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실 예전에 정말 유튜브만 하루 종일 7시간 이상 본 적이 있었다. 남고 보니 스트레스 푸는데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던 것 같다. 시간만 축내 버리고, 나중에 슬럼프 극복 후에 뒤돌아 보니 후회가 너무 많았다. 슬럼프 시기에 목적 없이 이 채널 저 채널을 돌아가며 보다 보면 여기저기 불필요한 것만 보게 되고 능동적인 사고보다는 수동적인 사고로 뇌가 변해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면 움직이기가 싫어지고 화장실 가는 것도 모든 게 다 귀찮아지게 된다. 심지어 더 울적해짐을 느낀다.
다섯째, 산책을 한다. 바깥공기가 맑고 날씨가 화창하다면 집안에만 있지 말고 편안한 복장을 하고 30분 정도 슬슬 걸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동네 근처 숲이나 한적한 곳을 권장한다. 녹색을 바라보며 걸으면 나도 모르게 삶의 감사함을 느끼며 기쁜 감정이 샘솟는다.
여섯째, 노트에 생각정리를 해본다. 지금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적어보고 그려본다.
일곱째, 생각을 너무 하지 말자. 단순하게 시작해보자. 열심히 그리고 복잡하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책상 앞에 보이는 하나의 문제를 푸는 것이다. 이것저것 복잡한 생각에 정작 중요한 내 눈앞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 이것은 본인에게 하는 말이다.
여덟째, 대충 끄적여본다.
사실, 생각이라는 것 경험이라는 것은 시간이 흘러야 생기는 것 일수도 있다. 단숨에 해결해버리고 싶고 빠른 시간에 높은 결과를 보고 싶은 욕심에 자신을 너무 재촉해버리는 것 같다. 그러다가 지쳐서 슬럼프에 빠지게 되고 아무것도 안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다가 다시 슬럼프 극복 방법을 써보고 단순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보는 것이다. 눈 앞에 주어진 작은 것들을 실천해 보면서 자신의 히스토리를 만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