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원하는 미술, 작가가 원하는 미술
작품 전시 후 기분이 심란하다. 뭐가 다 끝나서 후련한 것도 같은데.. 앞으로 뭘 다시 그려야 할지.. 지금까지 해온 것 계속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이번 남아공 UKZN대학원에서 공동전시를 잘 마쳤는데도 말이다. 급한 뭔가가 끝났을 때 사실 고민이 더 많아진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말이다. 사실, 전시라는 것이 딱히 뭐 없다. 그냥 그동안 그린 것 벽에 보기 좋게 거는 일이다. 너무 생각 없이 앞만 달려온 것이 아닐까? 잠깐 쉬었다가, 학생들이 시험 마치고 딱히 뭐 할일없이 빈둥대듯 마냥 그러고 지내는 것 같다.
논문도 써야 되고, 작품마다 해설도 쓰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마음먹고 시작한 작품생활인데 즐거울 줄만 알았는데, 사실 고독하다고 해야 하나? 본인이 만들어 놓은 플랫폼이 잘 되어가는 것인지, 계획대로 잘 안 되는 것도 같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아이디어 스케치를 직접 꺼내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도 일이고, 이것을 전시할 고민도 하니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이에게 마음대로 그려보라고 커다란 스케치북을 줬다. 아이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아주 재밌어하는 표정이었다. 엄마의 참견 없이 스스로 하고 싶은걸 그려서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중간중간 방해하는 없마의 지시가 생기면 이내 지루해지고, 고민에 빠지다가 그림이 재미없어진다. 이처럼 그림작가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작품을 함과 동시에, 이 시대가 좋아하는 미술을 해야 할지, 아님 내가 좋아하는 작품생활을 확고하게 나가야 할지가 고민이다. 센세이셔널한 아트를 하는 게 중요한 것인지? 그렇다면 뭐가 필요한 것인지 말이다. 시대가 좋아하는 그림만 따라가면 작가 성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붓을 들기가 어렵다. 이제 시작한 새내기 작가가 이런 생각으로 고민하기 사실 부끄럽다. 예술의 길은 정말 멀고도 험해서 그런 걸까?
옛날 고등학교 시절에 그림 가르쳐주신 은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림 그리는 것, 그거 그지야. 현실성 없는 백수. 그냥 그림만 좋아하는 나처럼 말이야.” 직설적으로 표현하시는 은사님의 표현에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요즘 들어 그 의미에 대해 조금씩 꺼내어 생각하게 된다. 선생님은 자신의 길을 30년 이상 가시는 이름 없는 작가이시다. 내가 보기엔 작품의 철학과 의미가 깊고 멋있는데 왜 이런 분을 세상에서는 몰라볼까?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는 것은 사실 대부분의 작가들 만족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공유하는 그런 가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작품이 시대에 올라와 모두가 호응해주는 센세이셔널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작가들의 바람이 아닐까? 자신의 피와 땀과 고독으로 만들어서 낳은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빛을 바라고 사랑을 받길 바라는 것은 모든 작가들의 바람이다. 산고의 고통을 이기고 낳은 자식 같은 작품이기에 더욱 그런 것이다.
머리가 복잡하고 감이 안 올 때 글을 쓰면 한결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아직 본인이 경험이 부족하여 이런저런 고민과 고독감에 빠져 낙심할 수 있겠지만 동시대에 열심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멋진 아티스트들을 본받아 살아가야겠다. 우리 은사님처럼 말이다. 이 시대가 필요한 그림을 그리든, 본인 스스로가 하고 싶은 아트를 하던 지금 걸어가는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하는 일이 마냥 즐겁지만 않다면, 흔들리지 않고 버텨야 한다. 시간이 결국 해결해주고, 그림이 말을 해줄 것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또 다른 과정이 있겠지만, 이것도 아티스트가 겪는 하나의 과정이고 길일 것이다.
본인이 본인에게 하는 말이다.
미흡하지만.. 저의 전시과정 궁금하시면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