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좋았다가 멀어진 관계들을 생각해보다가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지?' 하며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이것은 서로의 시간 바깥에 있어서 물리적 거리로 인해 소원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시점부터 급격히 한파가 닥치면서 점점 멀어진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 즈음 지인이 카페에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 짧게 각색해보면.
" 우리가 왜 멀어졌는지 모르겠다.
다시 예전 같은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
덧없다. 좋았던 관계가 지금은 어색하게 마주하여 이런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람 마음 시들어가는 것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서로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인 것 같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이유로 말했을 테지만, 그 오고 가는 말 때문에 상한 마음이 쌓여가고 마음에 균열이 생기는 상황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여 이어졌던 다리는 점점 균열되다가 결국 와르르 부서지고 말았으니까.
이제 불혹(不惑)을 넘은 나이가 되었으니 말을 이전보다 신중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요즘 들어 대화에 관해서 부쩍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대화를 하며 상대의 호감을 얻는다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거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말이 상대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편안한가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물론 대화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할 수 있다. 그날의 화두뿐만 아니라 그날의 감정, 그날의 컨디션,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 상태, 그리고 공기와 날씨까지도 모든 것이 대화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어떤 대화에서 편안함을 느꼈다면 ‘상대도 편안함을 느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대화에서는 상대도 불편함을 느꼈을까? 둘이나 셋, 다수를 만나는 것은 여러 문장 속에서 즐거움이 증폭되거나 불편한 피로감이 증폭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날 모두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내가 상대의 말로 인해 불편함이 생겼다면 그 근원은 무엇일까. 내가 예민했던 건가? 그때 내가 했던 대응은 괜찮았나? 혹시 나는 무례한 판단의 말로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지는 않았나?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 후 그 상황을 복기해보면서 상대의 입장에서도 서보고, 그 대화 바깥에서 제삼자의 시선으로도 객관화해본다. 그러면 뜻밖의 걸 발견할 때도 있다. 이것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같은 방송에서 자신의 모습을 CCTV로 보게 됐을 때, 비로소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자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화를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는 대화가 있다. 마음이 그러하니 나의 언어의 태도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대화 속에서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무엇일까.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나와 맞지 않아서 부대끼는 것이 있겠지만, 혹시 나도 모르게 '꼴 보기 싫다' 포지션을 설정해놓고 삐딱한 시선으로만 바라본 건 아닐까. 상대를 내 시선으로 판단하며 ‘나는 (당신보다)괜찮은 사람이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상대를 다 안다는 착각 속에서 상대를 판단하는 오만함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내가 그러하듯 나도 타인에게 성급한 판단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좋은 대화와 그렇지 않은 대화의 다른 점은 알고 있다. 수용과 배려 그리고 존중과 공감의 마음이 그 대화에 있거나 부재중이라는 것. 그런데 없었다면 왜 이것이 없었을까. 지극히 기본적인 것을 망각한 대화. 처음에는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사라지게 된 걸까...
말이라는 것은 어떤 순간에도 조심해야 할 나를 표현하는 도구다. 이 도구로 인격이 드러나니까. 지나 보면 별일도 아니고 예민할 일도 아닌 것이 그날, 그때,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여 괜한 말을 입 밖으로 발화하고 싶은 충동적인 순간이 있다. 그때는 의식적으로 조심해야 할 순간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린다면 마음의 균열이 일어나게 되는 안 좋은 방향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가시가 박힌 말은 관계에 치명적이다. 나중에 후회만 남는다. 그러다 결국 무너진 다리는 재건하기도 굉장히 어렵고... 나의 상황이 가장 안 좋은 순간에도 스스로 말을 걸러내야만 하는 작업은 결국 나를 위해서다.
자기중심적인 시선으로 판단하여 말하는 것을 지극히 경계하면서 유연하고 신중하게 말하기. 이것을 모든 대화에 적용시키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현재 나와 이어진 관계에서 늘 사려 깊은 언어로 말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사소한 말’ 안에서부터 부단히 애쓰며 대화 습관과 언어를 계속 다듬어 나가다 보면 이제부터! 괜찮게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 나아가는 것을 지속해서 하고 싶다가도 살던 대로 살까 하며 시도했던 것을 멈칫멈칫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 중에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 것은 좋으니까. 이 과정이 즐거움과 성취감을 얻는 것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결국 괴로움일지라도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이것도 결국 나에게는 좋지 아니한가.
그래서 결론.
우리의 관계는 나아질까.
다시 봄이 올진 모르겠지만 이런 고민을 해본다는 것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거니까. 여전히 우리가 같은 시간 안에서 함께하고 있다면 다시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야지. 좋았던 시절이 문득문득 생각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