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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Apr 15. 2018

여행을 왜 가세요?

여행은 휴가를 보내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 되었지만, 정작 여행을 가는 이유는 ‘그냥’ 좋으니까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을 '그냥' 간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딱히 이렇다 할 이유는 없지만' 간다는 의미가 됩니다. 여행을 가면 펼쳐질 일상의 역전에 대한 막연한 기대 때문일까요?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지는 몰라도 여행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할애합니다. 


세상에는 가고 싶은 곳도, 가야만 할 것 같은 곳도 많습니다. 넘쳐나는 여행에 대한 자극은 예비 여행자들의 마음을 재촉합니다. ‘여행에 미치다’, ‘딩고 트래블’ 등 최근 SNS를 통해 급속히 성장한 여행 미디어들의 생생한 영상과 매력적인 정보들을 접하다 보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고 싶어집니다. 여행 ‘뽐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범람하는 정보 앞에서 어디는 가고, 어디는 안 가야 할지, 무엇을 보고, 무엇은 보지 말아야 할지 갈 길을 잃기도 합니다. 길 잃은 여행자가 막연히 떠난 여행은 막연한 흔적을 남깁니다. 빡빡한 일정의 여행이었다면 육체의 피로와 무색무취의 사진만이 여행을 기억할 것입니다. 완전한 휴식으로 채운 여행도 어쩐 일인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처럼 금새 흩어지고 맙니다.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여행이 남긴 헛헛함이 밀려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여행을 합니다.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영감, 이국적인 환경에서 발견하는 취향, 새로운 것이 가져다 주는 물리적 자극 등 분명 여행이 주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치를 발견하는 여행이라면 짐을 싸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가치들을 발견하는 기회를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요? 


여행에서 가치들을 발견하는 건 여행자의 ‘시선’입니다. 보이는 것을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자 하는 것을 깊이 보는 것이 시선입니다. 관점을 갖고 밑줄을 그으며 정독한 책에서 생각이 자라나듯, 시선을 갖고 밑줄을 그으며 축적한 여행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행에도 시선이 머무는 밑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시선을 갖고 떠난 여행은 휴식을 위한 소비가 아닌 영감을 위한 투자가 되기도 합니다.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여행을 통해 <영국 기행>, <일본 중국 기행>, <지중해 기행> 등 무수한 여행기를 남겼고, <그리스인 조르바> 등 문학 세계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여행을 단순한 휴식으로 흘려 보냈다면 자유를 갈망하는 문학가 중의 한 명에 그쳤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모두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 여행을 통해 얻은 영감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는 않더라도, 인생에서 새로운 국면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초석을 닦을 수는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트래블코드’는 여행을 통해 인생의 초석을 닦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를 기획합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인생에서 중요시 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더욱 풍부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돕는 콘텐츠와 여행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얼마 전 도쿄 여행에서 발견한 비즈니스 인사이트와 아이디어를 담은 책인 <퇴사준비생의 도쿄>를 출간하였고, 책에 나온 곳들을 중심으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책 출간과 여행 프로그램 런칭을 위해 ‘비즈니스’라는 관점을 갖고 도쿄를 여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시선이 머물렀던 다양한 매장과 제품의 숨겨진 이야기에 밑줄을 긋고 공유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곳에서 발견한 이야기로부터 익숙한 곳을 바라보는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의 매장과 제품은 현지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고민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트렌디한 핫플레이스나 아이템보다는 화려하지 않아도 스토리가 있는 장소와 제품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막연한 기대보다 구체적 시선이 동기가 되는 여행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본 칼럼은 경제 전문 미디어 <이코노믹 리뷰>의 전문가 칼럼에 연재하고 있는 <최경희의 밑줄 긋는 여행>의 1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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