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사랑에 한계치가 있을까...

by Serenayu

80이 넘은 아빠와 70대 후반이신 엄마 생각이 문득 났다. 이 더운 여름에 늘 곁에 계시지만, 새삼스럽다.

어린시절의 나와 지금의 우리 엄마.. 손이 많이 고생을 하셨구나.

나는 1남 3녀의 큰 딸로서, 남동생과는 10년 나이차가 난다.

부모님은 딸 셋의 딸부잣집 부모로 사시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조금은 늦은 나이에* 남동생을 6월 중순에 낳으셨다. 그날이 선명하다. 무척 더웠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날 아빠는 기쁨의 표시로, 딸 셋의 책가방과 책상을 새로 사 주셨다. 티를 안 내려고 하셨지만, 주변 지인들에게도 크게 한 턱을 내셨을 것이다.

6인 병실에서 엄마는 제일 노령의 산모로 유일하게 아들을 출산한 산모였다. 큰 이모가 오셔서 장하다고 축하하시고 엄마는 아들 없는 설움이 일시에 해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들은 하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길지 않은 세월 나름의 설움을 받으시다고 성공하신 것 같다.


그랬다.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면 항상 나를 보고, 네가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는 데를 늘 반복하셨다.

나도 그 소리가 어찌나 듣기 싫었던지, 어린애가 당돌하게 그런 이야기할 거면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이 딱히 딸과 아들에 대한 차별 대우는 하지 않으셨다. 그 시절에 귀남이가 있었지만,

나는 늘 큰 딸로서 부모님의 적극적인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으면서 지내왔다. 어쩌면 동생들이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학창 시절,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나는 그분들의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있다. 나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해 주셨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도록.

그런 딸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독립을 했음에도 여전히 부모님의 돌봄을 받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이유가 될까...

아이들 양육을 엄마가 도맡아 해 주셨다. 엄마의 헌신으로 나는 직장생활에 나름 성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근 10년간은 잦은 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그 빈자리를 할머니가 채워주셨다. 그래서 우리 딸은 엄마는 주말 엄마 같다고 했다. 나보다는 외할머니와 애착 형성이 더 잘 되어 있는 듯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그대로 받아들인다.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지금도 엄마는 여전히 대학생이 된 손녀딸이 방학을 맞이해서 집에 있는 동안 매일같이 식사를 챙기면서 친구처럼 시간을 보내주고 계신다.


나 때문에, 엄마의 수고로움과 아빠의 이해가 있었고,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언제나 느끼면서도

그 고마움을 밖으로 표현하지를 못한다. 깍쟁이 같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이 나에게 해 주셨던 모든 일들이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스쳐 지나간다. 넉넉한 형편도 아니셨으면서, 자식들은 남부럽지 않게 해 주시려고 무던히 애쓰셨다. 부모님의 사랑은 무한대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어린 자식이 성인이 되어 가족을 이뤄도 늘 걱정과 사랑을 듬뿍 주신다.


늘 항상 곁에 계실 거라는 생각만 든다. 항상 건강하게 지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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