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일기
어제 전시 오프닝에는 특별한 손님이 왔었습니다
강원도 동해시에 사는 19살 소녀가 주인공이예요.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인데. 지역에서 작가 멘토를 만나기가 어려워 선생님께서 인터넷에서 찾아 제게 이메일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된 학생입니다.
4시간 버스를 타고 선생님과 함께 전시회에 왔답니다.
열정 가득한 순수한 미소가 정말 예뻤어요.
수줍은 여고생에게
이번 전시회 작가분들과 작가 진로 상담 시간을. 전시회에 놀러온 제 삐약이들에게 대학2년선배로서 신입생 꿀팁을 알려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님들과 삐약이들에게 대단히 고맙습니다.
저는 여러 분들을 멀리서 온 학생에게 소개해주다보니 정작 저와는 대화를 못했어요.
지나가다 저도 참여하게 된 질문 하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유학이 꼭 필요한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외부강연에서 신인작가분들께도 많이 듣는 질문 입니다.
저의 생각은.
'유학은.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하다기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해외에 있던것 자체가 큰 경험과 도전이 되어. 돌이켜보니 정말 소중했다.'
입니다.
제 인생에서. 에너지가 넘쳐 뭐든 하고 싶고/하려고 노력했던 20대의 시간에서. 해외에 혼자 나가 도전했던 그 시간들은. 인생의 자세를 만든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긴 유학이 아니어도 돼요.
배낭하나 메고 몇달 아니 한달이라도 유럽 여행을 떠날수 있으면 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렵다는거 알아요. 차근히 장기간 계획을 짜서 준비하면 가능할수 있어요.
돈 아끼겠다고 매일 하루 한끼는 맥도날드, 또 한끼는 슈퍼에서 파는 샌드위치, 가끔 컵라면을 먹으며 한달을. 두달을 다녔어요. 교통비를 아끼겠다고 온종일 걷고 걸었어요.
벨기에에서는 너무 싼 도미토리에 숙박해서 벼룩도 물렸어요. 살면서 처음 당해본거라 큰병 걸린줄 알고 응급실도 갔는데. 벼룩이래요.
(이후에 한국오니깐 엄마가 저랑 제동생을 아파트 복도에서 세워놓고 살충제 뿌렸어요....)
거지아저씨도 저랑 제 동생에겐 구걸도 안했어요 하도 그지꼴이라서ㅎ
그땐 그게 힘든지도 몰랐어요.
마냥 좋았아요. 미술책에서만 보던 작은 그림을 실제로 실컷보고 또 왔어요. 유럽은 학생할인이 많아요. 박물관 미술관 모두 특권을 누릴수 있어요.
지금은 그렇게 하고싶어도 할수가 없어요. 이제 그런 넘치는 에너지가 사라진 신체를 슬퍼해요.
제가 유럽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중에는 배낭 하나만 메고 전 세계를 1년동안 여행하는 22살 학생(그 학생은 여름만 쫒아다녀요. 겨울 여행지를 가려면 옷의 부피가 커진다고 안된데요. 겨울에 호주에서 여행을 시작해서 동남아를 거쳐 유럽으로 왔데요 유럽이 추워지면 아프리카로 간데요),
외국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지만 뭐 어떠냐. 라고 하며 어디가서든 그냥 다 한국말로 물어보고 다니던 배짱의 20살 학생,
긴 여행이 외롭고 심심해서 유스호스텔에서 저녁에 맥주캔 열개 사놓고 지나다니는 서양 배낭여행객들 맥주 한잔씩 주면서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27살 학생 등을 봤어요.
스쳐지나간 인연이었지만 지금도 그 학생들은 어딘가에서도 당당하게 삶을 정면으로 맞이하고 있을거 같아요.
이런 말을 적고 있는 나는. 나이가 많지 않아서. 지식과 견문이 넓지 않아서 충고. 조언 같은거는 못해줘요
그렇지만 이 말은 해주고싶어요. 그저 먼저 경험한 자로서.
인생에 가장 빛나는 시간에
크고 넓은 세상을 맨 몸으로. 온전히 만나길 바래요.
(이 자유롭고 빛나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아요. 슬프게도)
#여행 #도전 #그림일기 #허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