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꺼내보는 2015년의 일기-
이 일기를 쓰고 2020년이 온 사이에 할머니의 아들과 딸 둘이 할머니 곁으로 돌아갔다
언젠가 만나게 되는 이별이지만 이 이별은 정말 슬프고 어렵다..
2015.1.17
용감하게 혼자 밥 먹겠다고 들어가
덮밥을 시키고 기다리다
옆 테이블의 할머니와 손녀를 본다.
할머니와 이십 대 초반쯤의 손녀는 일상의 이야기, 공통인 딸/엄마 이야기, 지금 먹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소소히 하다가 이제 계산을 하고 나가려 한다.
계산을 내가 하네, 아니 내가 하네 툭탁툭탁 하다 재빠른 손녀가 냈다.
훈훈한 일상의 그들을 보다
나의 할머니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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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는 구 남매를 낳았고 칠 남매를 키웠고 둘을 어릴 적 잃었다.
할머니는 남편도 일찍 잃었고
종갓집 종손 며느리로 혼자 일곱을 키우고 집안을 버텼다.
칠 남매의 다섯째인 내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 할머니는 이미 정말 꼬부랑 할머니 셔서 다섯째 딸의 산후조리를 해주시기도 힘드셨을 것이다.
할머니는 큰외삼촌과 사셨는데, 가끔 자식들의 집을 돌며 며칠씩 주무시다 가셨다.
그때 우리 집에 오시면 참 좋았다.
할머니는 나를 특별히 더 예뻐하거나 하진 않으셨지만 난 작고 연약하지만 반짝이는 눈의 할머니가 그냥 좋았다.
작아진 할머니는 우리 집 소파 끝에 앉아계시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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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자식은 모두 잘 컸고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모두 자식들을 낳았고 할머니도 정정히 오래 사셨고 천수를 다해 조용히 하늘로 가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할머니의 장례를 호상이라고 불렀다.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엄마가 떠났는데 호상이라니.라고 난 아직도 소리 지르고 싶다. 물론 그것이 그들만의 위로 방식이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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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는 본인의 엄마가 조금 더 오래 사셔서
이 좋은 세상에. 이제 조금은 삶에 여유가 있어진 딸이랑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놀러도 가고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가끔 먼 하늘을 보며 이야기한다.
나도.
나도.
할머니가 아직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할머니의 팔짱을 끼고 내가 사드리는 밥을 나눠 드시고. 내 엄마 흉을 보고. 소소한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다 보니 내 밥은 다 식었다...
밥 먹기 전에 이런 추억을 생각하고 울렁하는 나를 보니.
이건뭐. 사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갱년기도 아니고.
난 아마 노처녀기 아닌가 싶다....
아니야. 감수성 풍부한 허작가모드 라고 포장하자...
#그림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