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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팍틸 박경화 Nov 29. 2017

[1화] IMF, 그 짙고 어두운 겨울 한가운데..

1997년 겨울, 수경이 생애 첫 직장을 알아보던 그때



쌀쌀하고 적막한 바람이 심하게 불던

1997년 겨울 어느 날,


부스스 일어나 보니 분위기가 자못 냉랭하다.

울듯 말듯한 묘한 얼굴의 어머니,

술에 취한 듯 눈이 풀려 계신 아버지,

평상시 무뚝뚝하신 오리지널 경상도 출신 부모님이

그날따라 잠 깬 날 오랫동안 쳐다보며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이 낯선 분위기는 뭐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오랜 침묵을 깨고 누군가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인데? 뭔.. 일인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터트린 것은....

바로 나였다.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동생들과 달리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 셋은 무거운 침묵이

한참이나 흐른 뒤에야 서서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경이 너, 대학을 못 보내겠다.”

침묵 끝에 나온 아버지의 첫마디였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해하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니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났어.

 그래서...... 대학을.... 못 보낸다는 이야기야.”


그 뒤 난 두 분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을 필요도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격앙된 목소리로 한참이나 큰 소리가 오고 갔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하나. 무엇을 해야 하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있다 문득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불안한 듯 바깥 눈치를 살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영 이상했다.

나도 어기적 일어나 창 밖 너머 풍경을 내다보았다.


이사 오고 가는 사람도 별로 없던 그 한적한 동네에

웬 이상한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우리 집을 응시하고 있던

두 명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들은 잠복 해 있던 사.복.경.찰이었다.

이제 진짜 어떻게 하지?


동이 틀 때까지 한숨만 푹푹 내쉬던 어머니는

날이 밝자, 어디론가 미친 듯이 전화를

돌려대기 시작했다.

“나야 나. 수경이 엄마. 그래그래~ 딱 1년만 쓸게.

이자? 내가 제대로 쳐줄게. 내가 언제 약속 안 지키는 거 봤어?”

어머니는 그렇게 급전을 땡길 수 있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은행에만 넣어도 18%씩 이자를 받는데 굳이 누가 돈을 빌려줄까?

하지만 어머니는 평생 목숨처럼 여기던 본인의 신용을 믿어달라며

돈을 빌리고 있었다. 물론 '달러이자'라고 불리는 월 3%의 이자로..


“그렇게 사업 말아먹는데 그냥 감옥가게 두지. 뭐하러 또 구해줘?”

자포자기 상태로 멍하게 있다 문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한숨을 한번 더 내쉬고

이내 한마디를 내뱉고는

또다시 열심히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족이란 원래 이렇게 징글징글한 것인가.

“그래도 범죄자는 만들지 말아야지 않겠냐?

저 인간 감옥 가면 느그들 결혼이나 할 수 있겠냐?”

 

아버지는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부도이자,

생애 6번째 부도를 맞이한

나약하지만 자존심만은 강한 분이었다.

그 나약한 빈자리는 늘 어머니 차지였다.

거친 일자리 마다하지 않고, 꾸역꾸역 메꾸며

한을 토해내듯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고 있었다.

 

나는 대학 합격증을 다이어리 수첩에

마음과 함께 고이 접어 숨겨 두고,

그 날 부로 미친 듯이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입사지원서를 따로 받지 않은 상황에서

취업 자리를 알아보는 것은 벼룩시장, 교차로 등

동네 소식지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고졸, 그것도 아무 기술조차 없던 19살 갓 넘긴 여자애가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엉터리 영업사원이거나,

제대로 회사 형식도 갖추지 않은 회사 아닌 회사뿐이었다.

그래도 미친 듯이 전화를 돌리고,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IMF.

거리에 실직자들은 넘쳐나고, 문 닫는 회사가 속출했다.

취업을 했다는 소식만으로 라디오 사연에 채택되어 축하를 받았다.


오늘도 금천구 시흥동 어디 이력서를 내고 돌아오는 버스 안,

우연히 보았던 창 밖 너머 풍경에 갑자기 눈가 이슬이 맺히더니

이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펑펑 울고 말았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설움이 북받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눈 안에 들어온 바깥 풍경

맥도XX라는 패스트푸드점. 그 안으로

고등학생으로 모이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재잘재잘 웃고 떠들며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누구는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인데, 누구는 돈을 쓰는 상황이 서글펐다.

아니 돈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부러웠다.

눈물에 얼굴이 엉망이 된 그 날 늦은 오후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시끄럽게 울려대던 그 소리에.. 깜빡 잠이 깨고 말았다.

전화 올 곳도 없는데..

받기 싫은 전화를 억지로 받는 기분이란...


받아보니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래서 대학 포기한다며? 사실은 혹시나 하고 연락했다.

선생님 아는 분이 알려줬는데, 유중이라는 기업에서 여직원 뽑는다더라.

한번 이력서 넣어보겠니? 될지 안될지는 나도 몰라”

생각지 못한 제의에 당황하며 우물쭈물하는 사이...

전화기 너머 한마디 더 들려왔다.


“그런데 마감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데, 가긴 어렵겠지?”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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