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뒤에 오세요

첫 번째 임신과 유산 3

by 황경진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일이 쉽게 해결될 줄 알았지만 그건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나이브한 생각이었다. 나는 신규 환자가 첫 진료를 예약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모르고 있었다. 응급실 한 번 가본 걸 제외하고는 병원 갈 일이 없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더군다나 예약하려 한 병원이 대학병원이었으니 사정은 더 좋지 않았을 테다. 당시 남편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우리 부부는 대학에서 제공하는 학생/가족 보험에 가입해 있었다. 그래서 다른 병원은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예약 문의를 하게 된 것인데 돌아온 대답은 두 달 후 첫 진료가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도 대학병원 예약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던가. 미리 예상했을 법도 한데 산타페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난 후라 그런지 두 달 후라는 말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래도 일의 경중이 있는 법인데 유산한 임산부에게 태연하게 두 달을 기다리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한 것 같았다. 정녕 더 빨리 의사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물었더니 직원은 두 가지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응급실로 가거나, 아니면 주치의의 소견서를 받아오거나.

사실 그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응급실을 가는 것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응급실에서 받게 될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 등에 말도 안 되는 금액이 책정되어 나왔겠지만 가장 빨리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응급실 포비아가 있던 그 시절에는 그놈의 응급실, 응급실을 갈 거였으면 진작에 갔겠지 하며 1번 옵션을 넘겨버렸다.

결국 두 번째 옵션을 선택했다. 미국에서는 소견서라는 것이 너무 중요했고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조금이라도 빨리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는(그게 얼마나 빨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견서가 필요했다. 소견서를 받은 환자에게는 허용되는 더 이른 예약이 소견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그게 이곳의 방식이었다. 주치의가 없던 나로서는 일단 주치의부터 찾아야 했고 바로 스탠퍼드 프라이머리 캐어 부서에 전화를 걸어 신규 환자를 가장 빨리 만나줄 수 있는 의사를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약속한 시간에 병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접수처에서 내 예약 내역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무슨 소리냐, 분명히 전화로 예약을 했다, 다시 확인해 달라 했더니 직원의 말이 아, 이번 주가 아니라 다음 주네요, 다음 주에 다시 오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의 인내심은 바닥나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예약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와 그날 밤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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