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임신과 유산 2
피를 쏟은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남편은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사정이 이러이러해서 병원에 가야겠으니 보험을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달라고 요구했다. 바로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전화 돌려막기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어떤 직원은 알아본 후 연락을 주겠다며 일단 전화를 끊고 못 본 척했고 그러면 남편은 다시 전화를 걸어 비슷한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전화통을 붙들고 이틀을 씨름한 결과 몇 줄 안 되는 병원 리스트를 겨우 얻어낼 수 있었다. 우리 보험사의 모회사라는 좀 더 큰 회사에까지 연락해 얻어낸 정보였다. 보험을 받아줄지 100%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남편은 숙소에서 가까운 병원부터 전화를 돌렸고 비교적 가까운 동네에 목요일 오후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더디게 흘렀지만 그동안 출혈과 통증이 거의 잦아들어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에서 병원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산타페의 동네 산부인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작고 낙후되어 있었다. 의례적으로 작성하는 온갖 동의서와 병력을 파악하는 긴 설문조사를 마치고도 한참을 더 기다려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초음파 기계가 보이지 않았다. 곧 이 병원에서는 어떤 검사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의사가 친절했다는 점과, 근처 다른 병원에서 초음파와 피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소견서를 써주었다는 점이다. 오늘 검사를 마치면 결과를 종합해서 다음 날 오후쯤 전화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소견서를 들고 일단 차에 탔다. 알려준 주소를 보니 초음파와 피검사 병원이 각각 달랐다. 오늘 안에 검사를 끝내려면 서둘러야 했다. 초음파 병원의 영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그곳부터 가기로 했다. 다행이 시간 내에 도착에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진료실에는 환자용 모니터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는데 옛날 브라운관 TV가 신호를 잡지 못해 지지직 거리는 것처럼 화면이 지저분했다. 뭐가 뭔지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다. 질초음파는 너무 오랜만이라 나는 원래 저렇게 보이는 건가 보다 했다. 저런 화면에서 뭔가를 알아보다니 역시 전문가는 달라 하면서. 초음파를 봐준 선생님은 예상했던 대로 유산일 확률이 90% 이상이지만 본인이 의사는 아니기 때문에 최종 판단은 유보했다.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피검사 병원으로 갔다. 한국의 3차 병원에 해당하는 꽤 큰 종합 병원이었다. 그런 것 치고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대기 없이 바로 피를 뽑을 수 있었다. 병원을 나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다음 날은 하루 종일 전화를 기다렸다. 약속했던 시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어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데스크 직원은 메모를 남겨놓겠다며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두 시간을 더 기다렸는데도 연락이 없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의사와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그렇게 금요일이 지나고 병원은 주말 내내 문을 닫았다.
다음 월요일 오전에도 전화가 없자 나는 그냥 병원으로 갔다. 의사를 만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겨우 다시 만난 의사는 호르몬 수치 변화를 확인해야 하니 피검사를 한번 더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또다시 소견서를 받아 들고 종합 병원으로 가 피를 뽑았다. 그러고 나서 이틀 뒤 최종 통보를 받았다. 유산인 게 확실하고 임신 중절 수술을 원한다면 내일 당장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아니, 갑자기? 전화 한 통 받기 위해 이삼일을 기다렸는데 내일 시술을 하자는 이 급전개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이 시간은 10일이나 흘러 캘리포니아로 돌아갈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병원을 찾느라, 결과를 기다리느라 너무 지쳐서 여기서는 더 이상 뭔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시술을 조금 뒤로 미룬다고 큰일 날 것 같지도 않았고 의료 수준이나 시술 후 회복을 생각하더라도 캘리포니아에서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결국 2주 동안 유산이 되었다는 사실만 간신히 확인한 채 우리는 산타페를 떠나야 했다. 그래도 그때는 떠나는 게 홀가분했다.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