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임신과 유산

by 황경진

첫 번째 임신과 유산은 2018년 뉴멕시코주 산타페에서 일어났다. 그해 여름 우리 부부는 남편의 인턴십 때문에 캘리포니아를 떠나 잠시 산타페에 머물고 있었다. 계획된 임신은 아니었지만 6년 차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임신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다만 근처에 당장 방문할 수 있는 병원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미국의 의료 보험은 주로 민간 보험에 의존하고 있어서 한국처럼 아무 병원에나 갈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해 병원에 못 가는 것은 아니지만 병원에서 보험을 받아주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진료비가 개인에게 전가되므로 주로 보험사와 연계가 확실한, 혜택이 보장되는 병원을 찾는 게 일반적이다. 당시 내가 가입해 있던 학생 보험은 캘리포니아 일부 병원에서 유효했고 뉴멕시코주에서 갈 수 있는 병원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병원 진료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간 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돌아갈 날이 3주 남짓 남아있었고, 미국은 첫 진료를 9~10주경에 보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진료가 늦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피곤이나 입덧이 문제가 아니라 생리통과 비슷한 복통이 지속되면서 끊임없이 피가 비쳤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길 없이 그저 착상혈이려니, 며칠 뒤엔 괜찮아지겠지 하고 참고 견디던 어느 날 밤, 엄청난 복부 통증과 함께 커다란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처음 있는 하혈이었다. 화장실 변기에 쏟아지는 핏덩어리들을 보며 나는 아기집이 떨어져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고(실제로는 아니었지만) 유산임을 직감했다.

한국이었다면 즉시 응급실로 달려갔겠지만 뉴멕시코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병원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겁먹을 일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때라 지금 막 쏟아진 피보다도 얼마가 나올지 가늠할 수 없는 의료비가 더 무섭게 느껴졌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머릿속에는 응급실 하면 3만 불(3,300만 원)이라는 숫자가 기본값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미국 온 지 3년쯤 지났을 때 나의 고질병인 요로결석이 도져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청구서에 처음 찍혀 나온 금액이 3만 불이었다. 청구서는 병원에서 보험사로 전달되었고 웃기게도 보험사는 병원을 상대로 네고를 벌여 병원비를 만천 불 가량으로 깎았다.(미국에서는 병원비도 네고가 가능했다) 그 후 계약에 의거해 비용의 90%는 보험사가,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천백 불 (약 130만 원) 가량을 우리가 최종 부담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일시불로도 지불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국과 비교한다면 여전히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병원에서 특별히 한 것도 없었다. 진통제와 수액을 맞고, 소변검사와 피검사, 엑스레이 한번 찍은 게 다였다. 결석은 소변으로 빠져나온 것으로 추정되어 사후 치료도 없었다. 한국이었다면 30만 원 정도로 끝났을 일이고 그것도 대부분 실비 보험으로 돌려받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때 미국의 악명 높은 의료비를 경험한 후로 응급실은 일단 피해야 할 장소로 각인되었다. 그때는 보험이라도 되었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더군다나 시술이라도 하게 된다면 정말로 어떤 숫자가 나올지 가늠할 수 없었다.

웬만하면 나를 병원에 데려갔을 남편도 응급실 가자는 말은 쉽게 꺼내지 못했다. 처음 접하는 상황에 당황하고 놀라 시뻘게진 눈으로 끊임없이 나의 상태를 점검했을 따름이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린 건 처음이었지만 정신을 잃지도 않았고 몸을 가눌 수도 있었다. 피가 한바탕 쏟아진 후로 출혈도, 통증도 잦아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응급실은 포기하고 다음 날 보험사를 통해 다시 병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그 상황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다. 아는 얼굴 하나 없는 외딴곳에서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심정이라니. 그때 처음으로 사회 보장 울타리를 벗어난 이방인이자 약자의 심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평생 경험해보지 못할 감정이었다.

지나고 나면 많은 일들이 별일 아닌 게 되어버리지만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조금 눈물이 난다. 암이나 심장질환, 뇌질환도 아니고 고작 유산된 일로 병원비가 걱정되어 응급실에 가지 못하는 나라라니. 그것도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에서. 그때는 정말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날의 경험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