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와 함께한 두 시간

by 황경진

찰리는 가까이 지내는 친구 부부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해 온, 꼬불꼬불한 갈색 털이 귀여운 중형견 강아지다. 자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친구 부부를 만나기 전까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안타깝게도 불안 장애를 앓고 있다.


나는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무하므로 누군가의 동물을 돌봐주는 일도 가능하면 거절해 왔었는데 최근에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혹시라도 누가 부탁한다면 가능하면 들어주는 쪽으로 마음을 바꿔 먹은 것이다.


마음이 바뀐 데는 친구들의 영향이 컸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주변에 동물을 아끼는 사람이 많아 이들로부터 서서히 감화된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면 친구 1은 언제든 로드킬 당한 고양이를 옮길 수 있도록 삽과 박스와 담요를 트렁크에 싣고 다닌다. 친구 2는 길에 사는 동물이 동사할까 봐 테라스에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친구 3은 입양해온 개와 고양이를 위해 아예 집을 내주었다. 유기견 임시 보호를 맡고 있는 친구도 여럿이고 입양한 친구도 여럿이다. 이런 친구들과 교류하다 보니 동물을 직접 돕기는 어렵지만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기꺼이 노력해보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주, 생일을 맞은 친구네 놀러 갔다가 찰리를 두 시간만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수락했다. 찰리는 이미 두어 번 봐서 얼굴을 익혔고, 그날은 기분이 좋았는지 테이블 밑을 왔다 갔다 하며 꼬리로 다리를 간지럽히기도 했다.


일주일 뒤 찰리는 깨끗하게 샤워를 마친 상태로 S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왔다. S는 물과 간식, 공 등을 전해주며 말했다. 옆에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얌전히 굴고, 화장실 교육이 잘 되어 있으니 집안에 실례를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공을 던져 주면 2시간이 금방 지나갈 거라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빠트렸다. 이 모든 사항은 S가 옆에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S가 없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S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 자리에는 S가 없으니까.


찰리를 맡긴 S는 현관문을 열고 유유히 사라졌고, 그때부터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다.


찰리는 눈앞에서 S가 사라지자 몹시 당황했다. 바로 호흡이 거칠어지더니 하울링을 시작했다. 그래도 S가 돌아오지 않자 바들바들 떨며 어쩔 줄 몰라했고 급기야는 응가를 싸기 시작했다.(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라 생각한다). 찰리를 보기 시작한 지 1분 만에 벌어진 일들에 나 역시 크게 당황했고 나도 모르게 앗, 제발 카펫만은 안돼, 하는 가느다란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 와중에도 찰리가 놀랄까 봐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마룻바닥과 카펫의 개념이 있을 리 없는 찰리는 마루, 카펫 할 것 없이 불안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응가를 흘렸고 곧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코와 입을 틀어막고 얼어버린 남편과 나. 그리고 찰리.


그다음에 바로 든 생각은 찰리가 밟기 전에 저 응가들을 치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찰리가 밟는 순간 더 큰 재앙이 벌어질 것이다. 강아지의 응가를 치워본 적 없는 나는 역시 강아지의 응가를 치워본 적 없는 남편을 몹시 애처롭게 쳐다보았고, 남편은 내 속내를 읽고 크게 한 숨을 내쉬며 부엌으로 가 비닐장갑 두어 장을 겹쳐 끼고 나왔다. 찰리의 응가를 하나하나 채취하는 남편의 뒤로 청소용 물티슈를 들고 바닥을 박박 닦아내는 내가 있었다.


그렇게 속을 비운 찰리는 우리가 열심히 응가를 치우는 동안 집안의 문과 창문의 위치를 확인하고 맹렬한 기세로 탈출을 시도했다. 맞다. 찰리는 2층 집 창문에서도 뛰어내린 경력이 있었다. 용맹한 기사의 무용담처럼 들었던 이야기가 하필 왜 그때 떠오른 것일까. 찰리라면 우리 집의 낡은 방충망쯤은 쉽게 찢어버리고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창문이 모두 닫혀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찰리는 포기하지 않고 테라스로 나가는 커다란 유리 문과 현관 옆 창문을 탈출구로 선정한 듯했다. 바닥 가까운 곳에서부터 천장 아래까지 아래 위로 길게 나있는 현관 옆의 창문은 찰리의 눈높이에서도 바깥이 잘 보였다. 찰리는 앞발을 들고 서서 권투선수처럼 쉴 새 없이 유리창으로 잽을 날렸다. 그러다 안 되면 테라스 문으로 뛰어가 같은 방식으로 문을 할퀴었다. 문과 창문을 왔다 갔다 하며 쉴 새 없이 유리를 난타했지만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로 유리를 물어뜯었다. 물론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러면 다시 구석에 가서 울다가 다시 창문으로 돌아와 같은 일을 반복했다.


우리도 어쩔 줄 몰랐다. 생전 개를 처음 맡아보는 사람에게는 고난도의 상황이었다. 막으려고 생각했다가 더 흥분해서 나를 공격하면 어쩌나 겁이 나기도 했고, 저렇게 에너지를 쓰면 금방 지치겠지 싶어 일단 두고 보려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행동은 저지하지 않은 채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온화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찰리, 괜찮아, 엄마 아빠 금방 올 거야."라고 어르기를 반복했는데 사실 그건 찰리한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우리는 찰리에게 물도 줘보고, 좋아한다는 간식도 줘봤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공을 굴려줘도 본체만체했다. 혹시 몰라 S가 두고 간 (찰리의) 엄마 냄새가 밴 잠옷도 그냥 밟고 지나쳤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더디게 흘러 30분이 지났고, 찰리는 30분 내내 창문을 펀치 하고 있었다.


지치기를 기다렸던 우리의 전략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찰리는 더 흥분한 상태가 되어 이번에는 창문 아래 벽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벽을 뚫고 나가려는 전략인 것 같았다. 50년이나 된 오래된 우리 집의 벽은 너무나도 쉽게 찰리의 이빨에 부서져나갔고 더 이상은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나는 찰리와 벽 사이를 파고들어 찰리를 막았다. 찰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안돼, 하면서 저지했다. 찰리는 곧 다른 창문으로 달려갔고 나는 한 발 앞서 창문을 막아섰다. 찰리는 내 눈치를 보며 창문을 바꿔가며 물어뜯으려 했고 나는 계속 저지했다. 그렇게 벽을 등 뒤에 두고 찰리와 대치하기를 또 20분. 찰리는 나의 단호함에 더 이상 벽을 깨물거나 유리창을 할퀴지는 못했지만, 대신 멀찍이 떨어져 하울링을 계속했다. 괴로워하는 찰리를 보는 게 나도 괴로웠다.


찰리는 굉장히 지쳐서 숨을 헐떡이면서도 앉지도 물을 마시지도 않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나와 남편은 이미 지쳐서 바닥에 주저 않아 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되지도 않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고도 한참이 더 지나서야 드디어 찰리가 눈을 맞추길래 찰리, 이리 와, 하면서 내 무릎을 톡톡 두드렸더니 그제야 찰리는 체념했는지 나에게로 와서 내 품에 안겼다.


아, 이제 된 것인가? 시계를 보니 1시간 20분이 지나 있었다. 찰리에게 다시 물을 주었더니 그제야 허겁지겁 목을 축였고, 간식은 여전히 본척만척했다.


찰리는 간혹 우리의 눈을 쳐다보며 제발 밖으로 나가게 해 달라는 듯 하울링을 했지만 더 이상 뛰어다니거나 힘을 쓰지는 않았다. 지치기도 지쳤고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과 사람에 조금은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보다는 남편이 더 믿을만하다고 느꼈는지 (내 두려움을 눈치챈 게 아닐까 싶다) 얼마 후부터는 남편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약속한 2시간이 지나고 S가 찰리를 데리러 왔을 때는 찰리가 나와 남편 사이에 너무도 얌전히 앉아 있었기 때문에 S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고 짧게 언질을 주었을 때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법도 하지. 모든 일은 S가 없을 때만 일어나니까.


찰리는 S가 오자마자 다른 개가 된 것 마냥 꼬리를 흔들며 신이 났다. S 옆에 딱 붙어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총 우리 집을 떠났고, 나는 약간의 서운함과 개운함을 느끼며 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하고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찰리가 오만 곳에 흘려놓은 침을 닦아냈다.)


미션 컴플리트.

좀 더 빨리 찰리를 안심시킬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찰리를 보호했다.


개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보다 7배 정도 빠르다고 한다. 인간의 시간으로는 2시간이지만 개의 시간으로는 14시간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따지면 찰리에게는 정말로 힘든 하루가 아니었을까.


오늘의 경험이 찰리에게는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하다. 인간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 더 높아져서 다음번 외출 시에는 좀 더 빨리 안정을 찾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엄마, 아빠가 사라지는 공포가 먼저 떠올라 더 불안해지는 방향으로 작용할지. 다음에 찰리를 만나면 우리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하다. 찰리가 하루 정도는 친구 부부 없이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도 남편도 두 시간 동안 고생이 많았다.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우리 집이 아니라 찰리네 집에서 보는 걸로 합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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