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뭐 해 먹을까 고민하는 데 지쳐 일주일 동안 한 음식으로 버텨 보기로 했다. 엄마가 한국에서 부쳐 준 말린 고사리와 토란대가 남아 있어 메뉴는 육개장으로 정했다. 미국에 온 후로 얼큰한 국물이 생각날 때 종종 육개장을 끓였다. 고기를 넣지 않기 때문에 육개장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육개장 밖에는 달리 부를 말이 없다.
결혼 후 8년간 고기를 먹지 않는 페스코 채식 생활을 이어왔다. 올해 초 여러 사정이 생겨 지금은 잠시 중단한 상태지만 일주일에 한 두 끼 정도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채식 중심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채식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가 극히 제한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동안 터득한 요리 노하우가 있다면 고기는 버섯으로, 고기 육수는 멸치 다시마 육수로 대체하면 거의 모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떡국을 끓일 땐 소고기 대신 표고버섯이나 양송이버섯을 넣는다. 참기름에 버섯을 볶다가 멸치 다시마 육수를 붓고 떡과 두부, 만두 등을 넣고 끓이면 맛있는 떡국이 된다. 매년 새해가 되면 주변 친구들에게 떡국을 끓여 주었는데 "버섯 떡국이 이렇게 맛있다니!"가 대체로의 반응이었다. 나는 내 버섯 떡국에 꽤 자부심이 있다.
육개장도 마찬가지로 소고기 대신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을 한가득 넣는다. 이번엔 특히 많이 끓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집에 있는 가장 큰 냄비를 꺼내 육수부터 내주었다. 멸치를 볶아 비린내를 날리고 말린 표고버섯과 무, 양파, 파, 다시마를 넣고 평소보다 진하게 육수를 뺐다.
육수가 끓는 동안 말린 고사리와 토란대를 삶았다. 육개장에 들어가는 나물은 부드러운 게 좋아서 푹 익을 때까지 이삼십여 분을 삶은 후 뜨거운 물에서 천천히 식혔다. 숙주도 미리 데쳤다. 지난번에 숙주를 그냥 넣었더니 풋 맛이 남아 있어 별로였다. 한 번 데쳐서 넣는 편이 훨씬 맛있다. 나물이 식으면 물기를 꾹 짜내고 국간장과 참기름,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로 밑간을 하고 한번 무쳐주면 준비가 끝난다.
큰 냄비가 하나밖에 없어서 육수를 양푼에 옮겨 담고 국을 끓였다. 식용유에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볶은 뒤, 파 두 움큼과 느타리버섯, 무와 양파를 넣고 함께 볶았다. 무쳐둔 나물까지 넣었더니 벌써 냄비가 가득 찼다. 넘치지 않도록 적당히 육수를 부어주고 한 시간을 팔팔 끓였다. 중간중간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지난번에 내려놓은 고추기름도 넉넉히 둘러 주었다.
고기 없는 육개장은 일반 육개장만큼 국물이 진하진 않지만 깨끗하고 담백한 매력이 있다. 매일 먹기엔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재료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세네 시간은 족히 걸렸지만 덕분에 일주일을 고민 없이 배부르게 보냈으니 이 정도면 가성비 갑이다. 목표했던 대로 5일을 내리먹고 마지막 남은 국물에 칼국수까지 끓여 먹었다. 먹을 때마다 내가 끓였지만 참 맛있어, 하며 먹었다.
하지만 냄비가 바닥을 드러내자마자 또다시 시작된 고민.
아 놔, 내일부턴 또 뭐 해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