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인 ‘나’에서, 지방에서 한 아이의 ‘엄마’로
“사실 오늘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그러다 문득 여기 카페가 생각났어요. 아, 나도 여기서 갈 곳이 있구나. 이야기를 나눌 ’성인‘이 있구나 하고요.”
몇 개월 전, 가게를 시작하고부터 종종 오시던 여자 손님이 계세요.
처음에는 그저 음료를 시키시고 책을 읽으며 1시간정도 계시다 가시기에, ‘아 휴식하러 오시는구나’하는 생각만 했죠.
그러다가 처음으로 말을 건내드렸어요.
“매 번 주말마다 혼자 오시는 것 같아요. 쉬는날이세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 그 이야기를 건내 인연을 맺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먼저 말을 건내지 않았으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을 테니까요.
“아, 제가 10개월 된 아기가 있는데 남편이 주말마다 쉬어서 자유부인 하러 잠깐씩 나오는거에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아이가 13개월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서울에서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 남자를 사랑해 결국 모든걸 내려놓고 지방으로 오기로 결심하신 분이셨어요.
시댁도, 처가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친구도 지인도 없는 곳으로 혼자 떨어지게 된거죠.
그렇게 낳은 아이는, 40이라는 나이에 가진 정말 소중한 보물이라고 하셨어요.
너무 예쁘고 소중해서, 건강하던 내 몸이 망가지고 출산하며 생긴 갑상선 문제로 체중이 20키로나 쪄버렸어도 아이를 늦게 낳은 노산을 탓하신 분이셨죠.
손님은 카페에 아이를 데리고 오실 때 마다 혹시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까 매번 걱정하고 챙기며 다니셨고
팔이 아프실만도 한데,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아이를 안고 계셨고(유모차에 내려놓지 않으시고, 장난감으로 유혹하지도 않으시고 그저 교감만 하셨어요)
계속해서 너무 사랑한다며 껴안고 대화하고 사진찍고 뽀뽀하시던 분이셨어요.
그런데 종종 그 분은 우울해보이셨어요.
살이 쪄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부끄럽다며, 자신의 외모때문에 사람들의 첫인상에서 좋지 못한 느낌을 줄까 늘 걱정하셨죠.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이는 말이 안통하니까 얘기를 해도 혼잣말 하는 기분인데, 이렇게 나와서 어른이랑 얘기하니까 너무 좋네요…’하며 씁쓸한 감사를 표하기도 하셨어요.
원래 엄청 활발하고 여러 활동을 하길 좋아하셨다고해요. 몇 일 대화 나눠본 저도, 정말 활발하신 분이고 많은걸 배우신 분이라는걸 바로 알 정도였는데
그 모든걸 다 포기하고 집에서 육아만 하고, 친구분들도 곁에 없으니 그 외로움이 더욱 클 거라는 느낌이 바로 오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하시던 배드민턴도 못치게 된 지 오래인데다가, 평소 드라이브하는걸 즐기셨는데 차가 없으니 그 재미까지 없어지신거죠.
또, 남편은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상사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셨어요. 이직을 해야하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하나 고민이 많으셨죠.
그러다가 아이의 돌잔치가 있던 24년 1월.
남편의 일자리는 상사의 뜻밖의 조언으로 좋은 팀으로 옮겼다고 해요. 하지만, 새로운 팀에 적응하느라 연차나 반차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죠.
차는 남편이 출근하면서 가지고갔던 어느 날, 손님은 귀가 심하게 부어 병원에 가야하는데 차가 없어 아이와 함께 택시를 탔죠.
그러다 일이 생겼다고해요.
아이가 추운 날씨에 택시를 기다리고, 타고, 돌아다니면서 모세기관지염에 걸려요.
그렇게 처음에는 ‘감기’인줄 알았던 상태가 점점 심해지고 심지어 엎친데 덮친격으로 손님은 갑작스러운 하혈을 하죠.
제가 장사하는 동네는 시골이라서, 산부인과에 미리 예약을 하고 가지 않으면 정말 오래 기다려야해요. 1시간을 기다리다 결국 진료를 못보고 집으로 오셨고,
그 1시간동안 아이는 급하게 구한 돌보미이모와 있으면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낯가림이 심해져 계속 울고있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돌잔치를 진행했으니, 아이는 계속 울지 먼 길 오신 양가 부모님들은 아이 웃는 모습 한 번 보지 못하고 안아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해요.
자신이 하혈하는건 재쳐두고, 아이를 데리고 자기의 귀를 치료하고자 택시타고 나간걸 무척 후회한다고 하셨어요.
“차라리 제 귀가 먹더라도 집에 있어야 했나봐요….”하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미어졌죠.
본인의 몸도 아프고 아이도 아파하며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차라리 포기한다면 하는 생각을 크게 하셨나봐요.
여기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아직 한 아이의 엄마도 아닌, 심지어 결혼도 아직인 제가.
단지 19개월 된 조카가 있고, 그 조카가 커가는 성장과정을 봤더라도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보지 않은 이상은 모르는게 있는거죠.
“앞으로는 힘들 때 여기로 오세요. 저는 늘 여기에 있으니, 커피 드시러 오시는게 아니라 수다만이라도 떨러 오세요.“
제가 건낼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었어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타지에서, 내가 편하게 갈 수 있는 공간 하나라도 있는 것.
내 아이를 반겨주고 함께 사랑해주며 성장하는 모습을 봐 줄 사람이 있는 것.
나를 알아봐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그런 안락함과 의지할 수 있는 작은 지지대로 있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 아닐까요?
아이 보는 시간을 늘리고자 모든 SNS를 멀리하고 그저 지인들과 연락만 하는 그 손님을 존경해요.
대단하며 멋있는 사람. 과거의 어떤 일을 했던, 지금 그 작고 소중한 딸아이의 ‘엄마’이신 그 분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여전하게 아이를 안은 상태에서 사랑한다며 안아주던 그 분을.
날이 추워지고 몇 일 째 오지 못하고 계신 그 손님께,
날이 따뜻해지는 봄이면 아이도 슬슬 걷기 시작하겠죠. 함께 정원을 산책하고 공놀이하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벌써 눈에 훤해요.
얼른 그 모습을 상상으로만이 아닌 현실에서도 볼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소망을 담아.
‘엄마’로만 존재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손님에게.
엄마이기 이전에 어떤 취미를 가지고 계셨는지,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네요.
우리 주변의 아이들,
조카든 아니면 나의 아이든.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요.
어제는 두 걸음 간신히 걷던 아이가 갑자기 뛰어다니기 시작하고, ‘엄마, 맘마‘만 하던 아이가 갑자기 ’토스트, 택배차‘등을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오죠.(제 조카가 그래요 흐뭇)
한 번 지나면 두 번은 오지 않을 이 소중한 시기에 조금만 더 눈에 담고 사랑할 수 있기를. 하고싶은 일들 다 해줄 수 있기를.
물론 어른인 나는 아이에 맞춰주기에는 지치고 힘이 들지만. 지루하고 재미도 없지만. 사랑한다는 마음 하나로만 아껴준다는 마음 두개로만.
핸드폰에서 손을 떼고, 아이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아지길.
+다음 이야기는,
조금은 색다른 손님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해요.
총 2분이 계세요. 그 분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시다고요? 그럼 다음 에피소드로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