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6월 에세이) 주제 : 말, 언젠가 적어둔 글을 가지고왔어요.
"너는 왜 그렇게 말을 재미없게 해?"
21살의 따뜻한 봄날, 나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한 마디에 내가 가지고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사실 가지고 있는거라고 해봤자 얼마 없었다. 다니고 있던 학과에 대한 열정, 새로 사귄 친구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이 친구들과 꾸려나가고 싶었던 일들 정도. 지금와서 그 순간을 후회하냐고 물어본다면,
그래.
얼마 전까지도 울지 않고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했고, 슬퍼했으며 절망했다.
나는 어릴때부터 말하는걸 참 좋아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이제 막 옹알이를 끝내고 온전한 문장을 만들기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끊임없이 말하고 웃고 떠들기를 좋아했다.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게 좋았고 그 중에서도 내 속 이야기를 터놓는걸 제일 좋아했다.
'나는 이래보이지만 그렇게 살았어' 라고 말하면 '너는 사실 그런 애였구나'하며 이해받고 위로받는것 또한 좋아했다.
물론 점점 커가면서 말을 조금 씩 잃어가기는 했지만(웃음).
나를 제일 오래 본 친구들은 나를 3인분이라고 불렀고, 그 중 한 친구는 나를 주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재미보다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걸 좋아했고, 가쉽이나 소문보다는 진짜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더 선호했다.
다른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 말을 꺼낸다는 생각은, 음.
글쎄. 해 본 적도 없지만, 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고 하고싶지 않기도 했다.
그런 나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말 하기를 멈췄다.
21살의 나에게, 그녀와 함께하던 대학생활은 세상의 전부였고.
내 전부는 그 한 마디에 무너져내렸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제서야 모든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들의 뒤를 쫓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벽을 보고 대화하는 것 같은 생각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민들로 뜬 눈으로 밤을 지세우던 나날이. 그녀의 한마디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아마 그녀는 기억하지도 못할,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
지금 와서 그때 왜 그랬냐고 묻노라면 '내가?'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물론 지금의 나는 그 이야기를 울면서 하지도 않고, 이제는 누가 볼지 모르는 이 글에 끄적거릴 수 있을 정도까지 왔다.
그때의 나를 회상하면 아직도 손이 떨리고 눈앞이 흐려지지만, 그래. 나는 광대가 아니었다.
내가 말을 재미있게 하지 않아도 내 주변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아직도 몇몇에게는 말하는걸 참 좋아하는 아이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 글을 빌어서 말하고싶은건, 내가 말을 많이 하지 못해서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늘 그 자리에 가면 나는 웃지만 그 사람들을 웃겨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는 것.
언젠가 솔직하게 모든걸 이야기하는 날들이 온다면, 그때는 꼭 울먹이지 않고 태연하게 꼭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 마냥 나는 원래 말을 많이 하는 아이였노라고.
늘 고맙고 미안하다고. 당신들 덕분에 내 잇몸이 마르고있다고. 그래서 덕분에 행복하다고 말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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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다니고있던, 아직 상처가 다 여물기 전인 24에 쓴 글이네요.
옛날에 쓴 블로그에 남아 그대로 돌아다니고 있던 생각을 가지고왔어요.
이 때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 계속 가지고 살아가며 더 큰 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