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은퇴, 노는 사람이 되었다

<은퇴일기, 그냥 노는 날들>

by 경국현


은퇴는, 그냥 노는 거다

“은퇴했어요.”

그 한마디가, 요즘처럼 복잡하고 이중적인 시대에는 뜻밖에도 많은 질문을 불러온다.

“어디서 일하세요?”

“다시 재취업은 안 하셨어요?”

“그래도 뭐라도 하셔야죠.”

그럴 때면 나는 조용히 웃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은퇴를 모르는구나.’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다른 일자리로 옮기는 것’쯤으로 여긴다.

회사에서 나와 자영업을 시작하거나, 정부 지원 프로그램으로 새 일터를 찾거나,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채우는 삶.

그들은 그것을 ‘은퇴 후 삶’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은퇴가 아니다.

그건 직장을 옮긴 것이다.

은퇴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한 경제활동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

그것이 진짜 은퇴다.

나는 51살에 본의 아니게 은퇴했다.

원하지도 않았고, 계획한 적도 없었다.

백혈병 진단.

몸은 무너지고, 정신은 부서지고, 살겠다는 의지조차 가물거렸다.

삶은 사치처럼 느껴졌고, 그럭저럭 숨을 쉬는 일조차 버거웠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아니, 순식간에 일에서 내려왔다.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니,

그때가 나의 진짜 은퇴였다.

지금 나는 예순이 되었다.

혼자 지내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신다.

이따금 서울로 올라가 대학원 강의를 하기도 하지만,

그건 ‘일’이라기보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명’ 같은 것이다.

돈을 위한 노동이 아닌, 존재를 확인하는 조용한 의식.

나는 은퇴했다.

그리고 지금은, 노는 중이다.

요즘은 친구들이, 선배들이 하나둘씩 은퇴한다.

그들은 말한다.

“은퇴 준비 중이야.”

“이제 뭐라도 해야지.”

“재취업 자격증 따고 있어.”

틀렸다.

그건 은퇴 준비가 아니라 취업 준비다.

다시 사회로 들어갈 계획이라면,

그건 은퇴가 아니라 또 다른 일자리 계획일 뿐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걸 은퇴라고 부르지 말자.

이름을 제대로 붙이는 것부터가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작이니까.

진짜 은퇴는 무위다.

소득이 없다는 두려움을 안고서도

‘사는 것’을 선택하는 용기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느긋함.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낼 줄 아는 여유.

오늘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저녁에 웃으며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평화.

은퇴는 그렇게 노는 일이다.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낯선 골목을 걷고,

오래된 기억을 곱씹으며, 하루를 천천히 살아가는 일.

아무도 찾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상태.

돈을 벌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마음.

그곳이, 진짜 은퇴의 풍경이다.

물론 쉽지 않다.

경제적 준비도 필요하고, 더 큰 건 마음의 준비다.

멈춰도 괜찮다는 허락.

일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없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국 또 무언가를 찾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나는 아직 은퇴할 수 없어.”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은퇴는, 그냥 노는 거다.

그걸 모르면, 은퇴해도 계속 불안하다.

그걸 알면, 일하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

나는 지금 논다.

그리고, 아주 잘 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