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삶의 덫, 그 너머의 재미

<이해관계와 쾌락을 넘어서는>

by 경국현


사람들은 일신상의 문제로 이해관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온갖 것이 다리를 잡고 늘어지며,

침몰하는 수렁 속으로 빠진다.

그 깊이는 알 수 없고,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리석음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삶은

어둠 속에 빠졌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중요한 것도 아닌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한다.


지성이 깨어 있는 사람만이 이 덫에서 벗어난다.

정신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공허함을 알기에,

쾌락을 진정한 낙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혼자라는 자각은 이해관계를 초월하게 만든다.

진정한 자아를 위해 살고, 자아가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살아가는 사람 —

그는 자기 자신에게 복종할 줄 알고,

자기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타인을 위해 살고,

타인의 손길에 의존해 살아간다.

남의 배려 덕분에 살아간다는 환상 속에 머문다.

타인을 위한다는 감정은 사실상 가면을 쓴 가식일 수 있다.

인간관계란 이름으로 포장된 상호 부담의 사슬 속에 허우적거리며 살아간다.


살아가는 것은 수단일 뿐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곧 목적이 될 수 없다.

만약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살아 있는 동안 재미있게 살라는 것이야말로 진리일 것이다.


재미없는 삶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신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구절은 허구에 불과하다.

그런 신이라면 굳이 경외할 이유도 없다.


고통 속에 닭장 같은 삶을 강요하고,

그 닭장 주인을 경외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지성인은 육체적 즐거움의 허망함을 알기에,

지속적인 정신적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삼국시대 원효대사의 삶은 그 예다.

그는 도끼 없는 자루에 비유된 육체적 즐거움을 알고,

동시에 하늘을 떠받칠 기둥 같은 정신적 도를 추구했다.

그는 깨달은 자였고,

파계승이었으며,

세상의 도를 비웃고 삶의 도를 실천한 이였다.


부처의 뗏목 비유처럼,

깨달음에 도달한 뒤에는 형식과 규율도 내려놓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남의 시선을 벗어던진 삶 — 그것이 곧 득도자의 삶이다.


삶이란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그렇다면 재미있게 늙어가야 한다.


원효는 세상의 도를 알고 나서,

깨달음 속에서 웃으며 떠난 사람이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긴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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