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곁을 허락하기 전에

<관계의 거리>

by 경국현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말이다.

“무우불여기자(無友不如己者)”
— 자신보다 못한 자와는 친구가 되지 말라.

이 말은 오만함이 아니다.
삶을 지키기 위한 처세이자,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이다.


자신보다 못한 이들과의 대화는 대부분 부정적으로 흐른다.
희망보다는 불만, 도전보다는 푸념이 주가 된다.
진심 어린 응원보다는 숨어 있는 질투와 평가가 더 많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대화한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말을 그대로 믿는 성급함.

기대는 망상을 낳고, 망상은 곧 실망으로 돌아온다.
그 실망은 인간관계의 쓴맛이 되어 남는다.

가장 좋은 처세는, 침묵이다.
마음을 닫으라는 뜻이 아니다.
말을 아끼고, 선을 지키라는 의미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둔다.
선을 넘는 자는 무례하고, 무례한 자는 결국 어리석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가장 자주 오가는 주제는 돈과 지위다.
이 주제들은 인간의 질투심을 자극하기에 더없이 좋다.

질투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다.


아담은 자신보다 뛰어난 이브를 질투해 사과를 먹었다.
카인은 신이 동생 아벨을 더 사랑하자, 동생을 죽였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나를 질투하지 않는다.

질투하는 자는 대개 품격이나 지성이 떨어진다.
그들은 돈과 지위를 앞세워 말하지만,
그 너머에는 늘 열등감과 불안이 있다.

이들과는 멀어질수록 좋다.

사람에게 나의 ‘곁’을 줄 때는
반드시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의 대부분 불행은
스스로 너무 쉽게 ‘곁’을 내준 탓이다.


만약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알아차렸다면
즉시 인정하고, 미련 없이 물러나야 한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할 것이다.
그러니 변명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고,
자신을 책망하지도 말라.

그저 조용히 멈춰야 한다.
묵언의 시간, 사고의 시간, 성찰의 시간.

질투하는 자들의 말은 들을 필요조차 없다.


글을 읽는다면 뜻을 이해하고,
말을 한다면 그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엔,
글의 뜻도, 말의 의미도 모른 채
질투에 눈이 먼 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 상상의 감옥에 갇혀
현실을 왜곡하고, 분별력을 잃는다.

이들과의 관계는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그들을 바로잡는 일은,
아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삶의 낭비다.


하루는 내 인생 전체와도 같다.

그러니 그 하루를 누구에게 허락할지는
신중하고 단호해야 한다.

인연은 선연(善緣)이어야 한다.
악연(惡緣)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


불필요한 사람에게 마음과 시간을 주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 삶을 보호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를 화수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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