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갖고 싶은 마음이 고통의 시작

<탐욕을 비우는 법>

by 경국현

소유란 ‘내 것’을 의미한다.
남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다.
타인의 재산은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


소유라는 개념은 세 가지 자유가 충족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사용, 수익, 처분.

이 중 단 하나라도 자유롭지 않다면,
그것은 온전한 소유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 한다.

욕망은 그렇게 시작되고,
곧 탐욕으로 자란다.
탐욕은 고통의 씨앗이다.


고통은 ‘갖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갖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고통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집이 없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갖고 싶은데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돈이 없어서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갈망하면서도 얻을 수 없기에
화가 나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아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결혼을 원하면서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슬픔은 찾아온다.


하고 싶은 마음은 욕망이고,
하지 못하는 상태는 고(苦)다.


침을 흘리는 본능처럼,
탐욕은 동물적인 충동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인간은
그 충동을 억제함으로써 인간이 된다.
억제가 없다면,
정신은 흔들리고, 삶은 무너진다.


탐욕은 인간이 쫓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사냥하는 존재다.


만족은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눈과 귀, 마음과 도덕—
모두를 덮는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이중적 인간의 초상을 그려낸다.

합리와 도덕의 얼굴 아래 감춰진 괴물,
그것은 바로 탐욕이다.


법과 도덕을 말하는 자들조차 쉽게 타락한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얼굴은 넘친다.

양의 탈을 쓴 짐승은
어디에나 있다.


탐욕은 시야를 흐린다.
지금 가진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더 멀고 더 많은 것을 향해 달리게 만든다.

스스로가 이미 풍요 속에 있다는 자각은 사라지고,
결핍의 허상만이 남는다.


‘갖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몇몇 스님들은 이를 실천하며 산다.

그들의 삶은 가난이 아니라 자유다.

『북본열반경』은 말한다.
“소욕지족(少欲知足)”
적게 바라면 만족을 알게 된다.

바라지 않으면 잃을 것도 없다.

무소유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다.

소유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직시하려는 태도.
그것이 무소유의 철학이다.


‘집을 버려라’는 말은
단지 물건을 비우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집착을 버리라는 뜻이다.

내 것이라 여긴 모든 것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다는 자각.
이 자각이야말로 비움의 시작이다.


현대인은 많이 가지고 있다.

남과 비교하면 부족해 보일지 몰라도,
자신보다 적게 가진 이들을 바라보면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졌다.

직장, 건강, 가족, 자동차, 옷, 친구, 신발, 돈, 집……
우리는 모든 것을 ‘내 것’이라 부른다.

하지만 본래 이 모든 것은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몇 가지는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어보자.

그 순간부터 삶은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다.

비록 무소유의 경지에는 닿지 못하더라도,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해탈의 시작일 것이다.

하지만 탐욕은 그런 생각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더 가지라’고 속삭인다.

문서와 증명을 통해 소유를 제도화하고,
소유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를 몰아간다.


그러나 세상 어떤 부자도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

가질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일부다.

하물며 부자가 아닌 내가 가진다는 것은,
더욱 희박한 일이다.

꺼지지 않는 욕망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탐욕을 내려놓는 일.
그것만이 인간을
진짜 자유롭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를 화수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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