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을 쫓는 인간>
우리는 환상 속에 살아간다.
실체 없는 유령을 좇는다.
그러나 유령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이제는 허상 속에서 허우적대는 삶을 벗어나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학적 사유다.
삶에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들 속에서
개념을 세우고,
그 개념을 기준 삼아
삶의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삶의 선택에 대해 말한다.
한 사람이 숲속에서
두 갈래 길을 마주한다.
고민 끝에
사람이 덜 지나간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이 시는 인생에서의 선택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선택을
이성이나 개념적 기준 위에서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눈앞에 아른거리는 환상을 붙잡듯
무언가를 선택한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허상을
먼저 머릿속에 그려둔다.
그리고 그 허상에 맞춰
삶의 방향을 정한다.
행복한 미래의 나를 상상하고,
영화나 소설 속 장면을 떠올리며
그 환영을 좇는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 없는 유령이다.
우리는 고정된 자화상을
가슴 깊숙이 품고 산다.
그 자화상은
때때로 현실을 왜곡하고,
그릇된 기준이 되어
삶을 지배한다.
1605년,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이런 환상과 현실의 충돌을 그려냈다.
돈키호테는 평소에는 이성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기사도 이야기가 나오면
상상 속 자화상에 몰입해
미치광이처럼 행동한다.
그는 현실보다
자신이 상상한 자아에게 복종한 사람이었다.
인간은 추상적 관념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러나 이 추상의 가장 큰 오류는
현실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 환상에 인생의 승부를 거는 일—
그것은 어리석음이다.
인간은 결국 동물이다.
비이성적 본성을 지닌 존재다.
하지만
돈키호테처럼 충동에 사로잡혀
허상을 좇으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것은
진정한 선택이 아니다.
개념적 사고.
그것은
이 동물적 충동을 억제하려는
이성적 행위다.
사고는 시간을 요구하고,
마음의 평정을 전제로 한다.
깊이 있는 사고와 감정.
그 사이에서 탄생하는 것이 바로
의지(意志)다.
인간의 행위는
감정과 사고가 얽힌 복합적 산물이다.
그 중심에 의지가 있다.
의지는 감정과 사고가
서로 충돌하고 협력한 끝에 도출된
내면의 명령이다.
우리는 그 명령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자화상이 명령하는 대로 따랐다.
그는 현실보다
상상 속 자아에게 복종한 자였다.
두 갈래 길에서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단호한 사유,
이성적 거리두기,
개념적 사고의 훈련을 이룬 자만이
그 길을 걸을 수 있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를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