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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Jul 14. 2023

5. 비몽사몽, 꿈이라서 좋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5. 비몽사몽, 꿈이라서 좋다.


        지금 나는 내가 아니다. 먹고 마시고 보고 느끼는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먹은 것이 없는데, 배가 고프지도 않다.


        ‘나는 누구인가?’ 

        ‘살기 위해서 먹는가? 먹기 위해서 사는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사춘기 시절에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낄낄거리던 기억이 있다. 꿈속에 있는 것 같다. 약물이 이 정도로 육체를 망가뜨릴지 몰랐다. 옆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를 보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강한 무기력이 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꿈을 꾸었다. 꿈속의 나는 9살이었다. 어머니를 따라간 시장은 어릴 적에 살았던 동네였다. 짜장면을 사 먹으면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간호사가 흔들면서 소리쳤다. “정신 차리세요” 그 소리에 꿈속의 9살은 사라졌다. 횡설수설 비몽사몽을 처음 겪어보았다. 정신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정신이 아니라 의지가 무너지고 있다. 무너지는 틈 사이로 낯선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있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철학자가 된다고 한다. 지금 내가 누구인지 힘을 짜내어 생각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고 있지, 그럼 아직 죽지 않은 거야.’라고 혼잣말을 한다. 지금 있는 이곳은 꿈속이 아닐까? 약물에 무너져 가는 육체는 내가 아닌 듯이 느껴진다. 생각하고 있는 ‘나’라는 것만 정신이 붙잡고 있는 듯하다. 살아온 기억들이 드문드문 연결된다. 내 이름을 낯설게 불러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딸과 아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렇게 정신을 잡아보면서 꿈인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보고 있다. 항암약물에 대한 육체적 고달픔이 생각보다 힘들다. 무조건 버텨야 하는 세상이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정신 놓치지 말고, 꽉 잡아라.’라는 말이 있다. 쏟아지는 무기력은 의지와 관계가 없다. 침몰하고 있다. 아무 생각이 없다. 육체와 정신이 하나인 듯 아닌 듯, 무너져 가고 있다. 육체가 정신을 끌고 가는 것인지, 정신이 육체를 끌고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꾸라지처럼 육체에서 정신이 도망가고 있다. 지금 육체와 정신은 무기력이 지배하고 있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잠이 온다.      



        ‘이것이 죽어가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갑자기 나의 존재가 신선해진다. 

        ‘이렇게 끝날 수도 있구나’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진다. 

        ‘산 자들이 알아서 정리하겠지’ 긴장의 끈을 놓아 버린다. 


        질병이 물리적인 육체를 죽이고 있다. 육체가 사라지면 정신도 사라지는 것인가? 정신이 영혼이라면 영혼은 신과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믿음으로만 있었던 세상이다. 그런데 이 생각도 귀찮아진다. 힘들어서 눈을 감아버린다.     



        치유의 길이 너무 멀고 힘들어도 그 길을 망설임 없이 가야만 한다. 하지만 항암약물의 부작용이 기다렸다는 듯이 강하게 왔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커서,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첫 경험이라서 어떨결에 멋모르고 항암을 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자에게 ‘힘내’는 공허한 소리였다.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이다. 모든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행복도 왔다가 사라진다. 지금 이 고통도 사라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 라는 그 생각만이 위로된다. 내 몸과 정신이 그때까지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다.    


 

        팔다리 움직일 기운은 없어도 정신이 조금씩 또렷해진다. 무기력을 쏟아낸 잠이 사라지고 있다. 정신을 차린 것이다.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은 육체 속에 숨어있을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것이 꿈이라면 죽어도 괜찮은 것이다. 영혼의 세계에서 깨어나 천국이든 지옥이든 찾아갈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기 전까지 모른다. 난 아직 꿈속이다. 영혼이 내 육체에 아직 있는 것이다. 살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꿈에서 깨어나기 싫다. 꿈속에서 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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