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국현 Jul 14. 2023

7. 상상 놀이, 플라톤이 개수작 부린다.

<삶의 전투를 받아들이며 中에서>

7. 상상 놀이, 플라톤이 개수작 부린다.



        힘없는 육체를 대신하여 정신은 얼마든지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다. 정말 하찮은 것이지만 병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누워서 끊임없이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우울할 뿐이다. 입원실의 지겨움을 탈출하기 위해 상상을 한다. 

        사방이 막혀있는 이곳은 죄의 심판을 받아 사회로부터 격리된 감옥이 아니다. 꾸역꾸역 올라오는 감정을 다른 것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따뜻하게 안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나를 안아주면서 놀아야만 한다.


     

        이런저런 상상이 놀이가 되어가고 있다. 사춘기 시절 짝사랑했던 여학생을 끄집어내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완성한다. 새로운 스토리로 아름다운 여인을 상상으로 불러낸다. 사업이 확장되어 돈방석에 앉아 있다. 빌딩을 짓고, 실버타운을 개발한다. 정치에 뛰어들어 군중들을 선동하기도 한다. 

        상상은 또 다른 상상으로 연결되어 하루가 금방 간다.    




        상상은 약물에 취해 누워있으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유희이다. 정신이 영혼이고 우주이다. 불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의식이 있는 한 정신은 무한대로 확장되어 나갈 수 있다. 플라톤은 감각으로 느끼는 현실의 세계를 부정하고, 이성으로 느끼는 세계가 진짜임을 주장하였다. 지금 상상이 감각인지 이성인지 중요하지 않다. 상상 속에서 진짜를 만나고 있는 것으로 믿고 노는 것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일생이다. 시간으로 표현하면 처음과 끝이다. 첫울음으로 시작하였고, 마지막 호흡으로 끝이 난다. 시간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은 1차원이다. 일직선의 숫자로 표현한다. 머릿속의 상상이 점점 재미가 있다. 

        누워있으니 병실의 천정이 보인다. 그러다가 이해되지 않아 당황스럽다. “이게 무엇이지?”     



        병실의 천정은 사각형이다. 정사각형으로 각각의 변이 1이면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따라(a²+b²=c²) 대각선은 √2이다. √2는 무리수이다. 1.41421356··· 끝이 없는 수이다. √2를 발견한 사람은 피타고라스의 제자 히파수스였다. 당시 만물의 근원은 자연수라고 주장하였던 피타고라스에게는 충격이었다. 인정할 수 없는 숫자였다. 결국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하였지만, 피타고라스의 뜻을 반대하고 세상에 알린 히파수스는 살인을 당했다.   



                                            "피타고라스가 제자를 죽었을까?"



        지금 병실 침대에 누워 사각형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눈에 보이는 대각선은 저쪽 끝에서 이쪽 끝, 분명 시작과 끝이 있다. 그러나 √2라는 숫자로 표현하면 끝이 없다. 대각선의 점 하나가 시작점이면 다른 한점은 끝나는 점이다. 모순이 생긴다. ‘이게 무엇이지’라는 상상은 우주로 향한다. 실재하는 것은 사각형과 √2이다. 그런데 √2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눈에 보이는 현실의 세계는 가짜이고, 이성으로 보는 이데아가 진짜라는 플라톤의 개똥철학이 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나는 숫자로 기억되었고, 그렇게 남들처럼 살았다. 질병으로 삶을 끝내기에 51이라는 숫자가 너무 적어서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닐 수 있다고 플라톤이 옆에서 개수작을 부리고 있다. 실재하는 것은 나의 육체와 정신이다. 그런데 정신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뭔가 설명이 안 되는 무리수 √2처럼 나의 시간도 이미 죽음을 넘어 또 다른 세계로 연결되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노아는 새로운 육지를 찾고자 새를 이용하였고, 새가 돌아오지 않으면 또 다른 세계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었다(창세기 8:12). ‘아뿔싸’ 내가 버린 신을 다시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 신은 욕심이 많은 존재였다. 

        눈에 보이는 현실뿐만 아니라 상상 속의 그 세계도 지배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신이 가짜 신이고, 진짜 신은 아직 내가 못 만나고 있는 것이면 어떡하지?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누가복음 17:19>.” 는 그 말을 믿고 싶어진다. 



"내가 믿는 신이 가짜라면, 어떡하지?"




작가의 이전글 5. 비몽사몽, 꿈이라서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