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모모 Jan 27. 2022

베를린, 나를 증명하고자 했던 시간  

7년 만에 2집 앨범을 가지고 돌아온 김세은 음악감독을 만났다. 

2018년 가을에 세은이가 "언니, 나 여기 베를린이에요"라고 카톡을 보냈다. 실력파 재즈뮤지션으로, 작곡가, 음악감독, 강사 등 N개의 정체성으로 N개의 프로젝트를 맡아 쉴 틈 없이 움직이던 그였다. "어! 프로젝트로 간 거야?"라고 물어보니, "아니. 그냥 맡았던 프로젝트까지 마감하고, 일단 멈춤하고 왔어요."라고 했다. 


배부른 소리일 수 있겠으나, 음악을 기계처럼 뽑아내고 있다는 생각에 위기감이 들었다고 한다. 멈추고 싶지 않아 하는 자신을 보며 왈칵 겁이 났다고 한다. 직업 음악인으로 살 것인지, 예술인으로 살 것인지 갈림길에서 계속 씨름했다고 한다. 사실 답이 있는 씨름이었다. 


내가 아는 세은이 맞다면. 맡은 일부터 정리를 하는 게 필요했다. 서울에 있으면 첫째는 본인 스스로가 그 일들이 하고 싶어서, 둘째는 관계로 인해 일을 못 맡겠다 할 수 없을 것 같아 떠나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간 곳이 베를린이라니. 내가 너무너무 좋아해서, 베를린만 네 번을 다녀왔던, 그 베를린이라니. 


세은은 베를린에 도착해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도시를 걷고, 멍 때리며 까페에 있고, 그냥 그렇게 꽉꽉 채워 넣었던 것들을 비우고 나니, 어느 날 갑자기 음악이 써졌다. 음악이 써진 김에 녹음까지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하루 만에 녹음이 끝났다. 그 음악을 들고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땡큐 베를린, 안녕 베를린. 


세은은 19년, 20년, 21년. 그렇게 곡을 만들고 왔음에도 바로 내놓지 못했다. 예술인으로서 자신을 다시 다잡아준 음악들이 자기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때까지 꽤 오랜 시간 품고 있었다. 자기가 찾아가기 전에, 자기를 찾아와준 음악이 진짜 자기 것이 될 때까지 잡고 있었다. 품고 있는 것도 꽤 큰 에너지와 고통이 수반된다는 걸, 지난 시간 동안 알았다. 그 과정에 또 많이 성장했다. 


그 음악이 세상에 나왔다. 여행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언니, 나 음악이 나왔어. 녹음까지 했어!!"라는 카톡을 받았을 때부터 너무 궁금했던 그 음악을, 이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앨범이 나오자마자 들어보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세은이 어떤 마음으로 베를린으로 떠났고, 어떤 영감으로 이 곡들을 썼는지 궁금해졌다. 


어느 날 세은과 마주 앉았다. 서로의 삶을 응원해주는 친구 이전에 음악감독과 작가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마주 앉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담겨진 꿈을 놓지 않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또 다른 드리머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은과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이제 공개한다. 



Q1. 이번 앨범 이름이 '여행자, Passenger'이고 부제가 '베를린에서의 기억, Memories of Berlin'이에요. 이번 앨범을 베를린에서 작업을 하신 건가요? 베를린까지 가서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사실 처음부터 음악 작업을 하러 간 것은 아니었어요.  경주마처럼 지금  눈앞에 주어진 목표지점을 향해 열심히 달리던 중, 계속 이렇게 달리기만 해서는 진짜로 원했던 삶을 살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제 마음을 때렸어요. 단거리 경주는 어떻게 해서든 해볼 수 있겠으나, 과연 장거리로 이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 앞에 자신이 없었던 거죠. 


그 질문을 만나고 난 뒤에 바로 멈출 용기를 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주어진 여러 프로젝트가 있고, 그것을 잘 해내는 것도 저의 미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앞에 나눴던 질문이 계속 저를 따라다녔고, 나중에는 불안감으로 자꾸 저를 괴롭혔어요. 그 불안감이 저를 덮치기 직전, 결심했죠. 떠나야겠다고. 그래서 베를린으로 갔어요. 멈추기 위해서 저의 안전지대를 잠시 떠나있기로 했던 거에요.  


Q2. 재즈 뮤지션, 작곡가, 영화음악 감독, 김세은 밴드 등 누구보다 열심히 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던 시점에 '잠시 멈춤'이라는 결정을 내릴 만큼, 본인을 불안하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를 뒤돌아보면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피아노를 잘 치는 세션, 곡을 잘 쓰는 작곡가, 편곡가가 되는 것처럼 무언가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하고 전문가가 되는 이상의 것을 추구했던 것 같은데 프로로 일을 하면 할수록 정작 그 중요한 것을 제가 계속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이유 모를 불안감 같은 것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주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고, 이끌리는 무언가에 영감을 받고, 그것을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구체화할 때, 즉 창작활동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데, 주어진 일이나 해야하는 일만 계속하다 보면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수동적으로 일을 기다리게 되고, 평가받는 일에 익숙해지고, 정작 해보고 싶었던 일은 끝없이 밀려나게 되더라고요.


여기서 잠깐 멈추고, 창작자 김세은, 예술하는 김세은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확인해보고 '아, 나는 그 정도까지 사람은 아니구나' 싶으면 딱 인정하고 저에게 주어진 일들에 감사하며 다시 일해야겠다, 그러나 최소한 나에게 다시 물어는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에게 베를린이란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고자 했던 곳,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이런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 나 여기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라는 것을 가장 먼저는 나에게 또 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그런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더 늦기 전에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김세은이 아닌, 내 앞에 수식어가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김세은과 마주해도 괜찮을 수 있는지를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Q3. 잘 다녀온 것 같나요? 


네. 잘 다녀온 것 같아요. 물론 완전한 해피 엔딩은 아니지만, 적어도 '창작자 김세은, 예술가 김세은으로 계속 살아가 봐도 되겠다, 아니 그렇게 살고 싶다, 아니 나는 그렇게 살아야 산다!'를 확인하고 왔어요. 앞으로도 계속 실패하고 좌절하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 그 마음을 먹고 왔다는 것, 당분간 뛰어갈 수 있는 마음의 연료를 채우고 왔다는 점에서 베를린 여행은 저에게 너무 귀한 시간이었어요. 



Q4. 여러 많은 여행지도 있었을 텐데 굳이 베를린을 선택했던 이유가 있으셨나요? 


미국은 유학 경험이 있었고 유럽 사람들 안에 깊이 뿌리 내려 있는 문화에 대해 알고 싶었어요. 저 유럽 사람들 안에 흐르는 예술의 역사, 예술에 대한 자부심에 대해 알고 싶었어요. 유튜브나 음반을 통해 유럽 사람들의 음악을 들으며 굉장히 궁금했었거든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 얘길 하고 싶길래, 저런 다양한 형태의 독창적인 음악들을 할 수 있지 너무 궁금했었거든요. 그동안 제가 배우고 학습해온 것들과는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어요. 그런 부분들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유럽, 그중에서도 힙스터의 성지라고 불리던 베를린으로 가게 되었어요. 


가서 닥치는 대로 공연과 작품도 엄청나게 보러 다녔는데, 거기는 진짜 그냥 예술의 나라더라고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그냥 벽에다가 그림을 그려놓고, 마침 제가 갔을 때가 베를린 라이트 페스티벌 기간이었는데, 도시 자체가 거대한 미술관이 되었더라고요. 건물들에 빛을 쏘아서 너무도 멋진 작품이 온 거리를 밝히고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그런 생각 자체가 너무 부러웠어요. 도시 하나를 예술로 덮을 수 있다는 그 생각 말이에요. 그 과감한 발상이요. 


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세계에서 제일 핫한 클럽들이 공존하고, 다양한 분야의 내놓으라 하는 아티스트들이 창조해내는 예술을 태어나 먹고 자라는 베를린의 친구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환경에서 이전부터 깊이 내려오던 음악, 예술을 탁월하게 할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친구들한테 문화예술은 보편적인 활동처럼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학생들이나 인디 아티스트들의 공연에도 관객들이 많고, 작품을 매우 진지하게 감상하고 공감해주는 모습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같은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부러운 면도 있었어요. 


Q5. 베를린에서의 경험이 이후 음악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해요. 


베를린에서 그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예술세계를 경험하면서 저는 예술은 결국 ‘나를 표현하는 거구나’라는 아주 본질적인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제가 꿈을 이루기 위해 교육받은 것들은 클래식이나 재즈, 다 서구의 뿌리에서 나온 것들인데 그동안은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방법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베를린에 다녀와서는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실험했던 것이 미디어 아티스트 무용수와 함께 작업한 '해녀'라는 작품과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눈 감고 간다]에 곡을 입혔던 것, 재즈와 국악을 접목한 코리안 포에트리 팀이었어요. 코리안 포에트리 팀은 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가야금, 판소리 등 현대 음악과 국악을 접목한 팀이었는데, 2019년 영국 에딘버러 축제에도 함께 다녀왔어요. 


한국에 사는 나, 아시아인으로서의 나, 여성으로서의 나, 이런 나의 여러 정체성에서 비롯된 고민을 담아내는 음악을 할 때, 가장 나다운 음악을 시작 할 수 있겠구나. 그럴 때 가장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음악들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를 잘 알아야겠구나, 나를 공부하고 들여다보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Q6. 2018년에 베를린에 다녀왔는데, 만 3년 만에 앨범을 냈어요. 3년이면 베를린에서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만도 한데? 베를린에서 충전하고 온 게 그동안 소진되지 않았는지 궁금해요. 


2018년에 갔었던 베를린은 항상 저 마음속에 있었어요. 내가 꿈꾸는, 어떻게 보면 오아시스 같은 세상이 안 잊히더라고요. 



Q7. 한 달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지만, 또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서, 지난 3년 동안 그 시간이 잊히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요. 


잊히지 않은 것뿐 아니라 정말 생생하게 기억해요. 어느 골목을 어떻게 걸어서, 어디 약국에 들어가서, 어떤 생각을 하고, 거기서 만난 사람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던 것까지 다 기억이 나요. 베를린에서의 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이 나에게 다 의미가 있으니까 안 잊히는 것 같아요. 천천히 생각하고, 걸어 다니고, 스케줄 하나 끝나면 바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까페에 앉아 한참 지나가는 사람들 쳐다보고. 그 가운데 다시 예술하는 사람, 창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하는 나를 만나고 온 것 같아요. 


Q8. 그 시간 속에 다시 곡이 써진 건가요? 곡만 쓴 것이 아니라 베를린에서 녹음까지 다 하셨더라고요. 


저는 약간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어서 공연 하나를 할 때도 정말 엄청나게 준비하고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서 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은 그러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냥 베를린 거리를 다니며 들었던 영감, 음악을 생각하면서 행복했던 기분, 다시 예술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 나, 그 삶을 기대하며 행복해하는 나를 그냥 앨범에 담아오고 싶었어요. 아니, 박제를 해놔야겠더라고요. 아니면 잊어버릴까 봐. 또 잊어버릴까 봐. 혹 잊어버리더라도 다시 꺼내 볼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녹음하고 왔어요. 나중에 다시 경주마처럼 미친 듯이 달리다 나를 잊어버리고 방황할 때, "김세은, 넌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증거물이 필요해서요. 어떻게 보면 생존형 앨범 녹음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웃음)


Q9. 베를린에서 녹음까지 해서 왔는데 2집 앨범을 바로 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어요? 


녹음해서 오긴 왔는데, 우선 저 안에서 이 곡들을 어떤 마음으로 작곡했는지 잘 설명할 수가 없더라고요. 저는 사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걸 녹음했는지 몰라요. 그냥 음악을 만들면서 행복했던 감정들만 있었어요. 아티스트로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은 덕분인지, 쉼 속에 찾은 새로운 호흡 때문인지, 베를린에서 얻은 영감으로 인해 마음이 들떠서인지, 그냥 여러 감정이 산재해 있는 거에요. 


일기장을 바로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베를린에서 다녀온 직후는요. 그래서 그냥 내 일기장으로 마음속에 품고 가끔 꺼내 보며 다시 읽고 그랬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이유는 충전하고 오니 막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나다운, 나만의 음악을 해야겠다 싶으니까 아이디어가 막 나오고. 지금은 여행자로 유럽을 방문했지만, 다음에는 내 음악으로 다시 유럽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코리안 포에트리’라는 프로젝트팀을 만들어서 유럽 음악의 첫 관문으로 에딘버러 음악축제 문을 두드려 다녀오기도 했어요. 2019년의 코리안 포에트리는 에딘버러에서 끝났지만, 다음 버전의 코리안 포에트리를 또 구상하고 있어요. 그 시간이 곧 또 올 수 있겠죠. 


Q10. 그때 에딘버러 음악축제에 저도 함께 갔었잖아요. 청중들의 반응도 정말 열정적이었고. 열심히 준비한 프로젝트였는데, 이후 코로나로 인해 유럽 진출이 제대로 성사되지 않으면서 상실감이 꽤 컸을 것 같아요. 


정말 그랬어요. 에딘버러 음악축제 이후 기획단계에 있던 2020년 프랑스, 뉴욕 등에서의 공연들이 코로나로 다 취소되면서, 개인적으로 상실감 같은 것이 왔었어요. 맥이 탁 풀려버리더라고요.


베를린에서 너무 꿈같이 시간을 보내고 와서, 거기서 얻은 영감으로 다시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그것이 더 큰불로 활활 타오를 수 있겠다 싶었을 때 갑자기 꺼져버렸으니까, 심리적 타격감이 더 컸었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삶에 대한 의욕이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거든요. 항상  즐겁고 살아 있는 것을 즐기고 감사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 때는 정말 염세적이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 시기에 설 수 있는 무대도 없고.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애를 쓴다고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별다른 목표도 없으니 오히려 베를린에서처럼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와지더라고요 그래서 눈 뜨면 그냥 성경 읽고, 기도하고 그러면서 살았어요. 


감사한 것은 그렇게 골방에 들어가 나와 하나님, 둘 사이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데, 꺼져버렸던 마음, 낮아진 자존감, 상실감, 상처들이 하나 둘 꺼내지면서, 마치 새 살이 돋듯 새로운 마음이 드는 것을 경험했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환경에 의해 나의 존재가 있고 없음이 아니라, 그냥 나로서 나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그 골방에서 알게 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상황이 어떡하든 내 사명은 예술을 하고, 음악을 하는 것이구나. 그것을 할 때 나는 가장 행복하구나. 상황에 상관없이 그것을 알고 해낼 수 있는 내가 되는 것, 그것을 지금 연습하는 중이라는 것을 그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되었어요. 



Q11.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을 잘 버티고 나와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 '아! 이제 앨범을 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가요. 베를린에서 가져온 음악을 세상에 꺼내도 되겠다고 마음을 딱 먹은 순간이 언제였는지 궁금해요. 


사실 한 번도 앨범을 내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없어요. 늘 내고 싶었어요. 다만, 꺼내지지 않았어요. 성공이나 나의 나됨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 이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편안한 마음이 들 때 꺼내고 싶었는데, 그 마음이 들기까지가 참 오래 걸린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저가 막 계획을 세우고, 팀을 짜고, 유럽 공연을 기획하고 할 때는 그 마음이 먹히지가 않았는데, 골방에서 치열하게 나와 씨름하고 눈물 흘리고 몸부림치고 난 이후에, 나 자신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게 된 이후, 그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제 됐다. 사람들이 내 음악으로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마음에 나의 이런 고민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이 딱 섰을 때 앨범을 내자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 앨범으로 남 보기에 성공하지 않아도 되고, 유명해지지 않아도 된다. 이 앨범은 나에게 그런 앨범이야. 그러니까 내도 돼. 그 마음이 그 골방에서 나온 후 들었던 것 같아요. 


Q12. 그 마음이 어떻게 들었네요. 


그러니까요. 신기하죠. 1년이라는 속을 비워내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 마음이 찾아오더라고요. 다 비워내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그 마음들이 오히려 싹 비워지고 나니. 어떻게 보면 코로나로 인한 자가 격리의 시간이 저에게는 또 다른 베를린이었던 것 같아요. 나를 다시 생각해 보고, 너의 마음이 어떠니 다시 물을 수 있었던 시간. 저 방이 베를린이었던 거죠. 


Q13. 이제 이 앨범을 갖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어요? 


이 앨범을 가지고 계획을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사실 이 앨범은 도약하기 위한 앨범이에요. 이 앨범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기보다는, "야. 이제 진짜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한번 해!"라는 것을 나 자신에게 이야기해주기 위한 앨범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Q14. 기대되네요. 그다음엔 어떤 음악들이 나올지. 


저도 많이 기대돼요. 3집이든 4집이든 혹은 꼭 앨범을 내지 않더라도, 나는 그냥 창작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자체가 감사하고 행복해요. 비록 그것이 자본주의 시대에 나에게 경제적 보상을 주지 못하더라도 말이에요. 물론 먹고 사는 문제는 계속 치열하게 해결해가야 하겠지만 알이에요. 흑흑. (웃음) 


Q15. '나의 음악에 대한 사회적 결과에 상관없이 예술가로서 나는 계속 고하겠다' 그 말속에 단단함도 느껴지지만 홀가분함, 가벼운 마음도 함께 느껴지네요. 이제는 좀 더 캐주얼하게 가볍게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겠다는 일종의 선언처럼이요. 


훨씬 가벼워진 것 같아요. 그래서 2집 앨범을 신호탄이라고 제가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 스스로가 저에게 가벼워졌다는 것이 저한테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어요. 이제 앨범을 내는데 7년, 10년씩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구나. 저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1집 나오고 난 뒤에 7년 만에 2집을 낸 거잖아요. 나에게 이제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창작 활동이 계속 이렇게 힘들기만 하면 어떡하나가 고민이었거든요. 이제 된 것 같아요. 뒤돌아 보니, 지난 7년 동안 창작자로서의 몸을 만든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Q16. 그런 점에서 이번 앨범은 본인에게 어떤 앨범인가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기분 좋게 작업했던 첫 앨범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스무 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이 다시 생각이 나더라고요. 나다운 음악, 지금 나온 음악들도 난데, 전 알고 있거든요. 저 안에 엄청 뜨거움이 많이 있다는 것을요. 지금까지는 서정적이고 차분한 음악을 1집과 2집을 통해 보여드렸다면 이제는 저 안의 뜨거움과 다이나믹함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또 해보고 싶어요. 그런 상상을 다시 가능케 해준 앨범이에요. 


Q17. 이번 콘서트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형식으로 준비하셨나요? 


이 앨범 같은 콘서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나를 막 보여주고 그러기보다, 내가 이 음악을 만들면서 가졌던 행복함, 우리 이렇게 다시 꿈을 추구하며 살아도 된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함께 온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 무대를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18년 가을 거닐었던 베를린이라는 공간을 저의 무대로 옮겨오고 싶었고, 그 거리를 저 친구들과 함께 걷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는 29일 공연은 1부는 저와 오랜 시간 음악에 대해,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왔던 친구,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와 함께 저의 음악과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2부는 창작자로서의 삶을 묵묵하게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저의 멋진 동료들, 배우 임성언, 재즈보컬리스트 남예지, 클래식피아노 동문 김은아 그리고 가수 최의성과 함께 서기로 했어요. 


김세은 콘서트 '베를린, 당신의 계절' l 1월 29일(토) 오후 7시 서울 CGV청담씨네씨티 엠큐브관


Q18.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 공연이 계속 꿈을 꾸고 싶고, 그 꿈을 좇고 싶은 드림어들을 위한 시간이구나는 생각이 들어요. '꿈꿔도 된다. 그렇게 해도 된다. 우리 같이 꿈꾸자'는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싶은 세은님의 마음이 공연순서에 그대로 녹여져 있다고 할까요. 


맞아요!!  이번 공연을 통해 저가 정말 원하는 거는 나와 같은 드리머들을 찾아내는 거예요. 결핍을 자양분 삼아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드리머들을 만나고 싶어요! 꿈꾸는 우리, 나이를 먹어도 계속 꿈을 꾸는 건 욕심이 아니야,  우리 계속해봐도 돼! 계속 같이 가보자!! 그런 이야기들을 공연을 통해 나누고 싶어요. 그래서 서로 멀리서나마 서로의 꿈을 지지해 주면서 함께 살아갈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기만의 베를린을 찾고 돌아가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저의 이번 공연이, 또 앨범이 그런 드리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그만큼 큰 위로는 저에게 없을 것 같아요. 



김세은 음악감독의 2집 '여행자ㅣPassenger-베를린에서의 기억' 

:: Melon ::  Genie :: Bugs :: VIBE :: FLO :: iTunes/Apple Music :: Spotify :: 



김세은 음악감독과 함께했던 2019년 에딘버러 음악축제에서


#김세은 #김세은밴드 #여행자 #Passenger #베를린 #베를린에서의기억 #MemoriesofBerlin 

작가의 이전글 2022 베를린 마라톤 대회! 참가자격을 얻었다! 야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